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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대한민국의 상징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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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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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기


Flag of South Korea.svg

이름
태극기

용도
국기

비율
2:3

채택일

1883년 3월 6일(조선)
1897년 10월 12일(대한제국)
1948년 7월 12일(대한민국)

요소
흰 바탕에 태극 문장, 사괘

설계자

대한제국 고종[1]

대한민국의 국기태극기(太極旗)라 불린다. 태극기는 흰 바탕의 기 위에 짙은 적색과 남색의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곤·감·리 4괘가 네 귀에 둘러싸고 있다. 태극기의 최초 도안자는 고종이다.[1] 태극기는 1882년 고종이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어기(御旗)인 '태극 팔괘도'를 일부 변형하여 직접 만들었고, 1882년 5월 22일 조미 수호 통상 조약과 9월 박영효 등 일본 수신사 일행에 의해 사용되었다. 태극기는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공식 국기로 사용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 정식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목차





  • 1 역사

    • 1.1 조선


    • 1.2 대한제국


    • 1.3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


    • 1.4 군정기


    • 1.5 현대



  • 2 도안과 상징

    • 2.1 사괘



  • 3 규격

    • 3.1 색상



  • 4 올리는 날

    • 4.1 국기 게양 시간

      • 4.1.1 국기 게양과 강하시각




  • 5 사건 및 사고


  • 6 역대 국기와 초기의 태극기

    • 6.1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



  • 7 같이 보기


  • 8 각주와 인용




역사



조선




조선국왕의 어기 '태극팔괘도'


조선은 국기가 없었으며, 조선국왕을 상징하는 어기는 있었다. 태극기는 조선국왕의 어기인 '태극팔괘도'를 일부 변형하여 고종이 직접 도안하여 제작하였다.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청나라의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에서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라는 글과 함께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을 제시해 놓은 데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마건충이 제안한 조선의 국기인 '청룡기'는 청의 국기인 ‘황룡기’의 도안에 착안하여 동쪽을 의미하는 색인 청색과 황룡기보다 적은 용의 발의 수를 제시함으로써, 마건충이 말한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고, 청의 속국임을 나타내게 하려 했다.


미국 전권특사 슈펠트 제독은 만약 조선이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깃발을 게양한다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려는 자신의 정책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생각해, 조선 대표인 신헌과 김홍집에게 "국기를 제정해 조인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태극기는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어기를 일부 변형하여 제작하였다. 1882년 고종은 태극기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백성을 뜻하는 흰색과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 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은 기를 제작하게 하였다.[1] 이는 고종이 계승하고자 했던 정조의 군민일체(君民一體) 사상을 표현한 것이었다.[2][3][4] 그러나 이 깃발은 다소 일본 제국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은 “반홍반청(半紅半靑)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될 것”이라 하여, 태극기 문양이 정해졌다.


이에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하여 직접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도록 하였고,[5] 9월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에도 일본의 증기선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직접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였다.[6][7] 1882년에 고종의 명을 받아 처음 제작되고 사용되었던 태극기[1] 는 1883년 3월 6일(고종 20년 음력 1월 27일)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되었다.



대한제국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기존의 태극기를 그대로 대한제국의 국기로 사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일제강점기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발발하며 전국적인 만세 시위에 태극기가 사용되자 태극기는 항일 운동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하였으나 임정 수립 초기에는 태극기를 국기라 칭하지는 않고 단체의 깃발로 사용하다가 1942년부터 한국의 국기를 ‘태극기’라고 표현하기 시작하였다.[4]



군정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태극기 사용이 자유로워졌고, 태극기는 광복 해방된 한국의 당연한 국기로 인식되어 1946년 1월 14일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에서도 태극기를 조선 국기로서 게양하였고, 소련 군정 하의 북한 지역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권 수립 선포를 앞둔 1948년 7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그때까지 내내 사용하던 태극기를 인공기(홍람오각별기)로 교체하였다.



현대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태극기가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다.[4] 이 때까지만 해도 태극기는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로 구성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통일된 작도법이 없어 다양한 규격의 태극기가 통용되어 통일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위해 정부가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안이 수렴되었으며, 여러 토론 끝에 최종적으로 '우리국기보양회'의 안이 채택되었다.[8] 최종적으로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로서 현행과 같은 태극기 규격이 정해졌다.[9]1950년 깃봉제작법 제정계기로 태극기가 개정되었으나, 법으로 통합국기로 채택되었다. 1984년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고, 2007년 '대한민국 국기법'이 제정되어 태극기의 제작, 게양, 취급의 지침이 되고 있다.



도안과 상징




세로로 늘여서 게양한 태극기


태극기는 《주역》의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 팔괘도는 복희 선천 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 후천 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2]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원 안의 모양은 음양 양의를 나타나고 4괘는 팔괘(八卦)를 대표하는 사정괘(四正卦)를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그 하효(下爻)와 중효(中爻)로 태양(太陽)·소음(少陰)·소양(少陽)·태음(太陰)이라는 사상(四象)도 나타낸다.



사괘










































구분
이름(卦名)
자연(卦象)
계절(季節)
방위(方位)
사덕(四德)
가정(家庭)
성정(性情)

Palgwae Geon.svg
건(乾) ☰
천(天, 하늘)
춘(春, 봄)
동(東)
인(仁)
부(父)
강건(健)

Palgwae Gam.svg
감(坎) ☵
수(水, 물)
동(冬, 겨울)
북(北)
지(知)
중남[子]
함몰(陷)

Palgwae Gon.svg
곤(坤) ☷
지(地, 땅)
하(夏, 여름)
서(西)
의(義)
모(母)
유순(順)

Palgwae Ri.svg
리(離) ☲
화(火, 불)
추(秋, 가을)
남(南)
례(禮)
중녀[女]
화려(麗)

사괘는 본래 팔괘 중에서 넷을 선택한 것인데, 팔괘는 중국에서 삼황으로 떠받들고 있는 태호 복희가 만든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복희는 동이족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그가 팔괘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고 밝힌 것은 《주역》 계사전이 최초이다. 다만 조선에 복희 선천 팔괘가 아닌 그것을 고쳐서 만든 문왕 후천 팔괘를 따르는 까닭은 복희가 팔괘를 만든 까닭이 우주 생성 원리를 설명하려 함인 반면 문왕은 우주 생성 원리를 인간의 치세 원리에 반영(“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이르는 〈“자연조화의 체”를 “인사의 용”에 적용〉한다는 사상)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 주장에서는 팔괘에서 “넷을 제하여” 만들었다고 하였으나, 근래에는 “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선천 팔괘와 후천 팔괘의 관계를 밝히어 팔괘 가운데 “넷을 선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2]



규격


태극기의 규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국기 규격



색상


태극기의 공식 색상은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에 지정되어 있다.[10]
































색표시방법

먼셀 색 체계[11]

CIE 1931 색 공간[11]

팬톤 색 체계[12]

웹 색상[13]

RGB
빨간색
6.0R 4.5/14
0.5640, 0.3194, 15.3
186 Coated
#CD313A
205-49-58
파란색
5.0PB 3.0/12
0.1556, 0.1354, 6.5
294 Coated
#0047A0
0-71-160
검은색
N 0.5
N/A
N/A
#0E0E0E
14-14-14
흰색
N 9.5
N/A
N/A
#FFFFFF
255-255-255


올리는 날


국경일과 그밖의 지정하는 날에 게양한다.[14]



  • 1월 1일: 새해


  • 3월 1일: 3·1절


  • 6월 6일: 현충일 (조기 게양)


  • 7월 17일: 제헌절


  • 8월 15일: 광복절


  • 10월 1일: 국군의 날


  • 10월 3일: 개천절


  • 10월 9일: 한글날


  • 국가장(國家葬) 기간 (조기 게양)

  • 정부가 따로 지정하는 날


  • 지방자치단체가 조례 또는 지방의회의 의결로 정하는 날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한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의 청사, 학교, 공항·호텔 등의 국제적인 교류 장소 등에는 연중 국기를 게양하도록 되어 있다.



국기 게양 시간


국기는 24시간 게양할 수 있으며, 야간 게양 시에는 적절한 조명을 해야 한다.
강우, 강설, 강풍 등으로 인해 국기의 훼손이 우려될 경우에는 하기 해야한다.



국기 게양과 강하시각


국기를 해가 뜬 동안에만 게양하고자 하는 경우, 다음 시각에 맞추어 게양하고 강하한다.











기 간
게양 시각
강하 시각
3월 – 10월
07:00
18:00
11월 – 이듬해 2월
07:00
17:00


사건 및 사고


2016년에 발생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자,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를 비롯한 보수 단체들이 퇴진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탄핵 반대 시위에 참가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가 특정 정치 세력의 상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생기기 시작했다.[15] 이후 이러한 문제점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 이어진 문재인 대통령 퇴진 운동 등 후속 집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역대 국기와 초기의 태극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



  •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1호


  • 데니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2호


  •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3호


  •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4호


  • 남상락 자수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6호


  •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7호


  • 김구 서명문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8호


  •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9호


  •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90호


  •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91호


  •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92호


  •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93호


  • 불원복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94호


  • 명신여학교 태극기·현판·완문 - 등록문화재 제468호


  •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648호


같이 보기


  • 한국의 기 목록

  • 한반도기

  • 국기에 대한 맹세

  • 팔괘


  •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 태극이 포함된 국가 혹은 지역의 깃발
    • 몽골의 국기

    • 티베트의 기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


각주와 인용








  1. 1882년 10월 2일자 도쿄 일간신문인 《시사신보》(時事新報) 제179호에는 고종이 태극기의 직접적인 도안자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지금까지 조선에 국기가 없었는데 이번에 청국에서 온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를 청국의 국기를 모방하여 삼각형의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서 쓰도록 한데 대하여 고종이 크게 분개하여 결단코 거절하면서,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도를 적색, 청색으로 그리고,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의 괘를 붙여서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출처: 김영조 기자, "태극기는 천손민족의 표시..중국보다 앞서", 오마이뉴스, 2007년 4월 20일) 태극기의 최초 도안자는 고종이고,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태극기를 그리는 역할을 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출처: 대한민국의 국기, 두산백과)


  2. 이태진 (2000년 8월 30일). 《고종시대의 재조명》. 서울: 태학사. 7쪽, 243~247쪽, 248~260쪽쪽. ISBN 89-7626-546-7 04910. (7쪽) 1882-1883년 사이에 있었던 국기(태극기) 제정 과정에서 고종이 자신이 계승하고자 애쓰고 있는 정조대왕(재위; 1776~1800)의 군민일체(君民一體) 정치사상을 그 도안에 담기 위해 이 과제를 주도한 사실 / (245쪽 6~10줄) 4개월여 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시에 사용했다는 … 규장각도서 중의 '어기'가 바로 그것이다. 


  3. 《문화원형백과》, 대한제국, 한국콘텐츠진흥원(2004년판)


  4.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태극기, 이상희 저, 넥서스BOOKS(2004년, 75~97p)


  5.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4 근대(1876~1945) 34쪽


  6. "태극기 창안자는 박영효 아닌 이응준"


  7. 그동안 태극기는 1882년(고종 19년) 제물포 조약의 사후 처리로 3차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 그들이 편승한 일본 증기선 메이지마루에서 처음 도안하여 사용하였다고 잘못 알려져 왔다. 그러나 국기 문제가 논의된 때는 이보다 앞서 강화도 조약 체결 당시 강화도 회담에서이며, 또한 박영효 이전에 미국 측 요청으로 김홍집의 주도 아래 이응준이 태극기를 만들어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사용했다. 박영효는 '이응준 태극기' 중 4괘(卦)의 좌·우를 바꾼 뒤 국기로 사용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미 조선 왕조의 군주를 상징하는 어기로서 “태극 팔괘도”가 규장각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태극기는 조선의 국왕을 상징하는 '태극팔괘도'를 변형하여,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8. “제각각 태극기 '조미수호 통상조약'에서 처음 제정? 태극기 디자인 변천사”. 2019년 4월 25일에 확인함. 


  9. 문교부 고시 제2호


  10. 대한민국국기법시행령, 제8조, 별표2


  11. “깃면” [Geometry of the National Flag]. 행정안전부. 2009. 2011년 7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2월 16일에 확인함. 


  12. “보관 된 사본”. 2012년 1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2월 23일에 확인함. 


  13. “보관 된 사본”. 2012년 2월 2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2월 23일에 확인함. 


  14. 대한민국전자정부 - 국기의 게양


  15. '탄핵 반대' 상징된 태극기…"이미지 왜곡" "가치 훼손" 비판”. 2019년 3월 31일에 확인함. 


  16. 태극기표준색도지정 (총무처 고시 제1997-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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