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목차 국명 기원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사회 사회문제 문화 종교 같이 읽기 각주 참고 자료 외부 링크 둘러보기 메뉴북위 39° 54′ 50″ 동경 116° 23′ 30″ / 북위 39.913889° 동경 116.391667° / 39.913889; 116.391667북위 31° 12′ 동경 121° 30′ / 북위 31.2° 동경 121.5° / 31.2; 121.5(중국 이어도 도발)eh“Major events in Sino-Polish relations”Poland“한-중 수교 (1992.8)”원본 문서“국가별 수출입”“중국 노선 탑승률 사상 첫 80% 돌파”“한국인 남편의 혼인종류/외국인 아내의 국적별 혼인”“[국제] 영화 2편 때문에… 중국-일본 신경전”원본 문서“[금융위기 6개월] ⑥ 흔들리는 세계의 공장 중국”원본 문서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Chinese highways for fast traffic add up to 65,000 km”UN 경제 사회국 인구 분과중국, 또 천주교 주교일방 임명 한겨레 2006년 11월 30일 이상수 기자바티칸-중국 ‘화해’ 급진전 한겨레 2008년 2월 22일 유강문 기자바티칸 교황청 중국어 누리집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보관 된 사본”원본 문서중화인민공화국분류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 공식 홈페이지주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주 부산 중화인민공화국 총영사관주 광주 중화인민공화국 영사사무실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중국망주 중화인민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국가정보, 중국 (외교통상부)과거 내용 찾기주 광저우 대한민국 총영사관과거 내용 찾기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관주 선양 대한민국 총영사관주 청두 대한민국 총영사관주 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관미국 CIA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자료(영어)China Travel Information (영어)중국 개요 - 세계선교네트워크의 정보중국에 대하여 모두 투어의 정보중화인민공화국 신발끈 여행사의 정보해외정보(중국편) - 하나투어 닷컴ehehehehehehehehehehWorldCat132441531n790911510000 0001 2160 78114009937-4cb11936107m(데이터)ge131732
대한민국몽골일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러시아극동 연방관구베트남필리핀중화인민공화국라오스베트남쿠바유럽 연합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러시아남아프리카 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 개요중국인중국어국가국기언어수도문화요리문학축제전통 음악드라마영화천연기념물종교공휴일명절세계유산스포츠정치브라질러시아인도중화인민공화국남아프리카 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라오스브루나이캄보디아미얀마베트남인도대한민국파키스탄네팔방글라데시오만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스리랑카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몰디브터키몽골이스라엘아제르바이잔조지아키르기스스탄이란아랍에미리트필리핀태국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아프가니스탄말레이시아홍콩동티모르키프로스피지바누아투사모아바레인러시아영국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네덜란드핀란드노르웨이몰타포르투갈아이슬란드스웨덴폴란드덴마크헝가리벨기에스페인아일랜드루마니아벨라루스수단기니이집트에티오피아마다가스카르캐나다쿠웨이트아르메니아레바논통가쿡 제도파푸아뉴기니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에콰도르볼리비아우루과이브라질칠레페루베냉남아프리카 공화국코트디부아르알제리모로코리비아르완다튀니지지부티가나케냐토고그리스세르비아체코일본이라크콜롬비아나이지리아우크라이나
중국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권1949년 설립공화국냉전기의 정체사회주의 국가공산주의 국가유엔 회원국G20 회원국상하이 협력 기구 회원국미승인 국가
홍콩홍콩 달러마카오파타카홍콩.hk마카오.mo동아시아공화국베이징상하이베이징상하이광저우난징시안푸저우칭다오톈진옌타이항저우란저우쑤저우1949년10월 1일국공 내전마오쩌둥중국 공산당일당제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덩샤오핑국내 총생산세계 2위중국 공산당중화인민공화국 헌법1949년1949년국공 내전중화민국분단국가하나의 중국황하 문명중국 대륙하나라상나라주나라한나라한족송나라19세기제1차 아편 전쟁제2차 아편 전쟁청나라대영 제국중국 대륙홍콩대영 제국마카오포르투갈청나라태평 천국 운동한족양무 운동변법 자강 운동서태후의화단 운동신해혁명1912년아시아중화민국중화민국1930년국공 내전중일 전쟁중국 공산당1945년일본1949년10월 1일국경절중국 국민당장제스타이완중화민국중화민국중화민국1992년8월 24일중화민국대한민국1949년1978년1978년1979년1979년1997년베이징천안문마오쩌둥궈칭제마오쩌둥마오쩌둥마오쩌둥공산주의인민공사대약진 운동류샤오치문화 대혁명학살불상문화 대혁명화궈펑덩샤오핑타이완중화민국문화 대혁명1930년대한자간체자덩샤오핑중국 공산당시장경제하나의 중국1989년톈안먼 사건2005년반분열국가법2009년2011년신해혁명신해혁명쑨원2010년류샤오보노벨 평화상2015년러시아아편전쟁유라시아국경km러시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몽골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히말라야 산맥남아시아네팔부탄아프가니스탄인도파키스탄동남아시아라오스미얀마베트남황해대한민국동중국해일본타이완 해협중화민국화베이 평원둥베이 평원티베트 고원톈산 산맥티베트 자치구에베레스트 산m신장 웨이우얼 자치구투르판 분지m1949년10월정당인민해방군1954년1949년1982년인민해방군국가주석국가주석시진핑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총서기군사위원회정치민주집중제중국공산당전국인민대표대회국가 주석국무원법률인민검찰원1989년 톈안먼 사건대기원시보구평공산당2010년류샤오보노벨 평화상1997년영국홍콩1999년포르투갈마카오행정 구역성자치구직할시특별행정구홍콩마카오타이완중국 대륙사법부고문영장인권1949년소련법률1979년미국유럽스웨덴분단국가중화민국스탈린1964년프랑스1979년1월 1일미국중화민국소련미하일 고르바초프세계무역기구우크라이나타이완중화민국중화민국UN회원국22개국바티칸부탄폴란드1949년10월 1일1950년6.25전쟁10월 25일인해전술덩샤오핑1992년2015년소련공산주의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80년1980년대지린 성옌볜 조선족 자치주조선족1989년 톈안먼 사건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89년 톈안먼 사건명동동대문시장남대문시장롯데월드1989년냉전1992년8월대한민국중화민국2008년4월 27일대한민국서울2008년 베이징 올림픽한국인외국인2008년 중국인 성화봉송 폭력시위 사건5차 핵실험사드 배치대한민국제주도이어도대한민국 공군대한민국제주도이어도S-400대한민국S-400S-400HQ-19대한민국동아시아1960년사토 에이사쿠다나카 가쿠에이오히라 마사요시마오쩌둥저우언라이난징 대학살1970년대1991년소련 붕괴덩샤오핑장쩌민당중국 인민해방군징병제모병제러시아세계 군사력 순위T-72IL-28중국인민해방군러시아쿠즈네초프 항공모함대한민국일본중화민국필리핀베트남대약진운동마오쩌둥계획경제인민공사덩샤오핑자본주의세계무역기구2003년미국아프리카미국서구대한민국일본대한민국방글라데시둥베이 평원산둥 반도중일 전쟁공산주의후진타오전국인민대표대회1990년상하이푸동 국제공항자기부상열차티베트말녹차차마고도세계 은행창 강창 강수나라대운하주 강쑹화 강설날청명노동절단오추석국경절민족한족좡족몽골족조선족티베트족위구르족만주족후이족뤄바족스텝윈난 성1970년대1997년1999년홍콩마카오표준 중국어타이완오어광둥어객가어한자대한민국한국어 한자간체자좡어티베트어위구르어나시족동파 문자표의 문자영어러시아어한국어일본어홍콩마카오표준 중국어광둥어영어포르투갈어문맹률티베트 자치구신장 위구르 자치구문맹2003년의무 교육초등학교중학교9월7월미적분복소평면역삼각함수가오카오6월 7일6월 8일신화통신신화통신1931년장시 성루이진1934년대장정마오쩌둥1937년옌안인민일보중국중앙방송신화매일전신참고신문중국신화방송인민일보1948년해방군보광명일보공인일보중국일보베이징타임스중국중앙방송CCTV북경TV방송홍콩스타TV방송1980년대광고BBC만리장성자금성1982년로마 교황청2006년쉬저우중국 공산당중국 공산당삼자애국운동중국기독교협회호함파지방교회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동방번개대한민국뉴질랜드대한민국러시아말레이시아멕시코미국페루베트남브루나이싱가포르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일본중화 타이베이중화인민공화국칠레캐나다파푸아뉴기니필리핀홍콩
중화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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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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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华人民共和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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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의용군 행진곡 | ||||
수도 | 베이징 북위 39° 54′ 50″ 동경 116° 23′ 30″ / 북위 39.913889° 동경 116.391667° / 39.913889; 116.391667 | ||||
최대 도시 | 상하이 북위 31° 12′ 동경 121° 30′ / 북위 31.2° 동경 121.5° / 31.2; 121.5 | ||||
베이징 상하이 | |||||
정치 | |||||
공용어 | 표준 중국어 | ||||
정치체제 | 일당제, 공산주의, 사회주의 | ||||
공산당 총서기 (최고지도자) | 시진핑 | ||||
국무원총리 전인대 상무위원장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최고인민법원장 | 리커창 리잔수 왕양 저우창 | ||||
역사 | |||||
건국 | |||||
•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수립 | 1931년 11월 7일 | ||||
• 대장정 | 1934년 11월 5일 | ||||
•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 1949년 10월 1일 | ||||
지리 | |||||
면적 | 9,596,960 km2 (4 위) | ||||
내수면 비율 | 2.8% | ||||
시간대 | CST1 (UTC+08:00) | ||||
DST | 없음 | ||||
인구 | |||||
2016년 조사 | 1,374,370,000명 (1위) | ||||
인구 밀도 | 140명/km2 (72위) | ||||
경제 | |||||
GDP(PPP) | 2015년 어림값 | ||||
• 전체 | $18조 9,758억 (1위) | ||||
• 일인당 | $13,801 (75위) | ||||
명목 | $11조 2,119억 (2위) | ||||
HDI | 0.719 (91위, 2014년 조사) | ||||
통화 | 런민비 (위안)2 (CNY) | ||||
기타 | |||||
ISO 3166-1 | 156, CN, CHN | ||||
도메인 | .cn3 | ||||
국제 전화 | +86 | ||||
1 전국이 단일 시간을 쓴다. |
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 간체자: 中华人民共和国, 정체자: 中華人民共和國, 병음: 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 중화런민궁허궈[*] 듣기 영어: People's Republic of China)은 동아시아[1]에 있는 공화국이다. 줄여서 중국[2](중국어 간체자: 中国, 정체자: 中國, 병음: Zhōngguó 중궈[*])이라고도 한다.
수도는 베이징(北京)이고, 최대 도시는 상하이(上海)이다. 주요 도시로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난징, 시안, 푸저우, 칭다오, 톈진, 옌타이, 항저우, 란저우, 쑤저우 등이 있다.
1949년 10월 1일 국공 내전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중심인 마오쩌둥이 승리하여 건국되었고 초대 국가주석이 되었다, 지금까지 중국 공산당의 일당제로 통치되고 있으며, 건국 이후 크게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약진 운동과 수많은 국가적 피해와 민간인 피해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 문화대혁명 등이 벌어지고,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중국이었으나, 덩샤오핑의 지도로 개혁개방을 시행하면서 현재 국내 총생산 기준으로 세계 2위 규모이다.[3]
목차
1 국명
2 기원
2.1 중화민국(중국 국민당)
3 역사
3.1 마오쩌둥 시대
3.1.1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3.1.2 대약진 운동
3.1.3 문화 대혁명
3.1.4 간체자 보급
3.2 덩샤오핑 시대와 현재
4 지리
5 정치
5.1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
5.2 전국인민대표대회
5.3 국가 주석
5.4 국무원
5.5 인민검찰원
5.6 정치국 상무위원회
5.7 말단 행정기구
5.8 민주화 요구
5.9 홍콩과 마카오의 일국양제
5.10 중화민국(대만)
5.11 행정 및 행정 구역
5.11.1 중앙 행정
5.11.2 행정 구역
5.11.2.1 성(省)
5.11.2.2 직할시(直轄市)
5.11.2.3 특별행정구(特別行政區)
5.11.2.4 자치구(自治區)
5.12 사법
5.13 대외 관계
5.13.1 대한민국과의 관계
5.13.1.1 외교관계 맺기 이전의 관계
5.13.1.2 상호방문 허용
5.13.1.3 냉전 붕괴 이후
5.13.1.4 북한 5차 핵실험 이후
5.13.2 일본과의 관계
5.13.3 외교 문제
5.14 대외 정책
5.15 군사
6 경제
6.1 경제사
6.1.1 경제발전시기
6.1.2 경제부흥기
6.1.3 대약진 운동
6.1.4 인민공사
6.1.5 경제조정기
6.1.6 현대공업체제
6.1.7 개혁개방
6.1.8 세계의 공장
6.2 농업
6.2.1 지역별 농업
6.2.2 전통적인 농업방식
6.2.3 쌀
6.2.4 밀
6.2.5 고구마
6.2.6 옥수수
6.2.7 콩
6.2.8 면화
6.2.9 가축
6.2.10 문제점
6.3 공업
6.4 무역
6.5 소득 격차
6.6 교통
7 사회
7.1 공휴일
7.2 인구와 주민
7.3 언어
7.4 교육
7.5 언론
7.5.1 통신
7.5.2 신문
7.5.3 방송
7.6 환경
8 사회문제
8.1 성매매
9 문화
10 종교
10.1 불교
10.2 천주교
10.3 개신교
10.3.1 양회(兩会)
10.3.2 가정교회
10.3.3 사교(邪教) 탄압
10.3.4 외국인의 중국 선교
11 같이 읽기
12 각주
13 참고 자료
14 외부 링크
14.1 정부 기관
14.2 대한민국
14.3 미국
14.4 기타
국명
국명의 약칭은 중국(중국어 간체자: 中国, 정체자: 中國, 병음: Zhōngguó)이고 미화해서 중화(중국어 간체자: 中华, 정체자: 中華, 병음: Zhōnghuá)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밖에도 국외에서는 중공(中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공은 본래 중국 공산당의 약칭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서 중국 공산당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 정부”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건국 초기에는 1949년 이전의 시대를 구중국(舊中國),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를 신중국(新中國)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하였다. 1949년 국공 내전 이후 중화민국 정부는 분단국가로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국의 합법 정부는 자국임을 표방하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원
황하 문명 이래 중국 대륙에서는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그리고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북방 이민족에 침략되어 지배받는 역사도 매우 길었다.
한나라 때 중국인인 한족의 기틀을 세웠지만 선비족이 북조를 세우면서 외국 민족들이 중국인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선비족들이 중국 각지를 지배하면서 이주하면서 지배층이던 선비족과 피지배층의 중국인 한족들이 혼혈화가 진행되었다.송나라 때에는 몽골인들의 지배를 받았고 많은 몽골인들이 지배층으로서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명나라를 건국하지만 만주족이 중국인들을 유린하고 만주족의 국가인 청나라가 건국되면서 지배층인 만주족과 피지배층의 중국인들의 혼혈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들어서 제1차 아편 전쟁과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가 대영 제국에 패배하였고 서양 열강과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여 조계지를 설치하였고 중국 대륙은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했고 홍콩은 대영 제국에 넘어갔으며 마카오는 포르투갈에 넘어갔다.
청나라의 무능에 반발하여 태평 천국 운동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피지배층이던 한족의 농민들과 노비들이 양무 운동과 변법 자강 운동이 차례로 일어났으나 청나라와 열강의 간섭으로 실패했다. 한편 서태후 등 보수파의 사주로 반외세 운동인 의화단 운동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중화민국(중국 국민당)
중화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 후 신해혁명이 일어나 1912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 중화민국(중국어: 中華民国)이 탄생했다. 하지만 각지의 군벌에 의한 내전으로 중화민국은 분열되었다. 또한 1930년대에는 국공 내전(중국에서는 보통 “해방 전쟁”이라 칭함)과 중일 전쟁(중국에서는 보통 “항일전쟁”이라 칭함)이 발발하여 중국 각지가 전장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중앙 정부가 2개 이상인 때에도 있었다.
그 후 중일 전쟁 중에 세력을 늘려 온 중국 공산당이 1945년의 일본(日本) 패배 이후 국공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매년 10월 1일을 국경절(건국일)로 정하고 이를 기념한다.
한편 내전에서 패한 중국 국민당의 총통 장제스정권은 타이완섬으로 도피하여 중화민국 정부를 유지하였으나, 공식적으로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화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1992년 8월 24일에는 중화민국이 대한민국과 단교되면서 아시아계 수교국을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빼앗기고 완전히 고립되었다.
역사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는 국가 지도자의 지도 이론이나 정책 등에 따라 마오쩌둥 시대(1949년~1978년), 화궈펑 시대(1978년~1979년), 덩샤오핑 시대(1979년~1997년)와 같이 3개 시대로 분류할 수 있다.
마오쩌둥 시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49년 10월 1일 베이징(北京)의 천안문(톈안먼, 天安門) 광장에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다. 이 날을 궈칭제라고 한다. 그해 마오쩌둥(모택동)는 “5억 중국 인민이 분연히 일어나 혁명을 이룬 만큼 국가 건설의 과제를 달성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혁명에 성공한 마오쩌둥은 이른 시일 내에 온전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대약진 운동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추진하면서 인민공사(人民公社)와 전국적인 대약진 운동(大躍進運動)을 실시했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진행된 급진적이고 무모한 정책 운용은, 농촌부의 황폐화로 인해 식량난과 대량의 아사자를 발생시키며 결국 실패로 끝났다.
문화 대혁명
그 후 경제를 재건할 방법으로 마오쩌둥과 류샤오치가 대립하였고, 마오쩌둥은 권력 탈환을 위해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을 일으켰다. 혁명 중 마오쩌둥으로부터 “반혁명파”라고 규정된 많은 사람이 탄압당하거나 학살당하여, 국내는 일시 내란 상태가 되었다. 또 불상 등의 중국 각지의 귀중한 전통 문화재도 “반혁명”적인 존재로서 파괴되었다. 문화 대혁명은 마오쩌둥의 죽음과 함께 종결되었고, 일단 화궈펑(華國鋒)이 마오쩌둥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의 실권을 잡았다. 한편 당시 타이완의 중화민국 정부는 문화 대혁명의 반 전통적인 면을 비판하였다.
간체자 보급
193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문맹률은 80%에 달하였다. 즉 5명 중 글을 아는 사람은 1명밖에 없었다. 이에 마오쩌둥은 중국의 문맹률이 높은 이유를 어려운 한자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한자를 간략화한 간체자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덩샤오핑 시대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 후부터 당시 초강대국이였던 소련의 지배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소련의 붕괴 이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은 소련의 영향력에서부터 자유롭게 미국과 서방 세력에 개방적인 정책을 펼 수 있었다.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은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를 견지함과 동시에,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등 경제 개방 정책을 실시하여 중국의 현대화를 진행했다. 실제로 덩샤오핑은 프랑스 유학 시절 르노자동차에서 근무함으로써 서유럽의 시장 경제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만큼 경제가 급발전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급격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빈부 격차의 확대와 환경 파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중국은 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위협하는 활동이나 중국의 분열을 촉진할 수 있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1989년 톈안먼 사건 진압과 2005년 반분열국가법 성립 등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2009년 건국 60주년, 2011년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으면서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을 중국의 민족 지도자의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2010년에는 중국의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받았다.
지리
중화인민공화국의 면적은 9,596,961 km²이며 2015년 11월4일 러시아로부터 아편전쟁 시기 러시아에 할양했던 4.7km2의 영토를 반환받아 중화인민공화국의 면적은 9596.965.7 km²로 확장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유라시아 대륙 동부에 있다. 국경은 총 22,117km로, 국경이 세계에서 가장 긴 국가이다. 북동쪽으로 러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 북한), 북쪽으로 러시아, 몽골,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남서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남아시아의 네팔, 부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의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과 접한다. 해상으로는 황해를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 동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화민국과 접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상당히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으므로 지방마다 기후 등 지리 특색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형은 서고동저(西高東低)로 동쪽에는 화베이 평원(중국어 정체자: 華北平原 화북평원[*])과 둥베이 평원(중국어 정체자: 東北平原 동북평원[*]) 등의 평지가 있고, 서쪽에는 티베트 고원(중국어 정체자: 靑藏高原 청장고원[*]), 톈산 산맥(중국어 정체자: 天山山脈 천산산맥[*]) 등의 험준한 산지가 많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곳은 티베트 자치구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산(주무랑마 봉)으로 높이는 8,850m이다. 가장 낮은 곳은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위치한 투르판 분지(중국어 정체자: 吐魯番盆地)로 높이는 -154m이다.
정치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에는 정당·정파·인민해방군·기타 개인 등으로 구성된 인민정치협상회의가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을 탄생시킨 모체로서 국가권력기관의 핵심을 이루었으나 사실상 공산당의 절대우위가 인정되었고 1954년 이후에는 공산당이 정치권력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1949년 '공동강령'(임시 헌법)의 채택 이래 1982년까지 4차의 개정을 거치는 동안 국가권력기관·인민해방군에 대한 권력구조 조정작업이 수반되었다.
헌법상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는 '국가주석'이고, 현재 국가주석은 시진핑이다. 최고권력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이나 국가주석은 군통수권도 없고 요직을 겸할 수도 없는 의전상의 지위에 지나지 않으며 전인대 역시 공산당이 우위에 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총서기·정치국·군사위원회 주석)에 정치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
3권 분립을 특징으로 하는 서구의 정치와 달리 전국인민대표회의가 사법과 행정을 감독하도록 하는 민주집중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에 의한 사실상의 일당독재 체제이다(혹은 일당 집권, 다당 협상 체제라 일컫는다). 그 외에 8개의 정당(‘민주제당파(民主諸黨派)’라 부름)이 존재하지만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따르고 있으므로 사실상 정치적인 영향력을 거의 갖지 못한다.
다만 2017년 민주주의 지수 기준으로 공산당원 추천하에는 선거의무가 마지막으로 생겼다(기존0에서 0.07상승)
전국인민대표대회
형식적으로는 최고 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에 권력이 집중되는 민주집중제를 취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서구의 의회에 상당하는 기구로 32개의 성, 자치구, 직할시, 홍콩 특구 및 인민해방군에서 선출되는 대표로 구성된다. 헌법의 개정과 헌법 실시, 감독 및 기본 법률을 제정, 개정하며 국가 주석과 부주석을 선출하고, 국가 경제, 사회 발전 계획 및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심의, 비준한다. 산하의 상무위원회가 소집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중국의 인민대표는 18세 이상의 중국 공민에 의하여 선출되는데, 향과 현2급의 인민대표는 직접선거를 거쳐 선출되지만, 그 상위의 대표들은 간접으로 선출된다.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대표들은 성급인민대표들의 선거로 선출된다.
국가 주석
국가 주석은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선출하며, 임기는 5년으로 2회를 초과하여 연임할 수 없다. 국가주석은 국내외에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며, 법률을 공포하고, 총리, 부총리, 국무위원, 각 부장, 각 위원회 주임, 국무원 비서장을 임명한다. 하지만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헌법에 국가주석 임기를 폐지하고 개헌하게 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장기집권하게 된다
국무원
총리가 수장인 국무원은 전국인민대표회의의 집행기관으로 법률에 근거한 행정법규 및 명령을 제정, 공포한다. 인민 경제, 사회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국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다.
인민검찰원
인민검찰원은 중국 최고 검찰기관으로 지방의 각급 인민검찰원과 전국인민검찰원의 활동을 지도한다. 전국인민대표회의와 상무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정치국 상무위원회
실제로 국정을 움직이는 것은 ‘당(黨)’이며, 당의 최고 지도집단인 정치국이 있고 정치국안에 상설집행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政治局常務委員會)가 권력을 장악하는 구조이다.
말단 행정기구
중국공산당은 중앙뿐만 아니라 말단 행정기구까지 장악한다. 말단행정기구 역시 중앙과 같은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각급 지방 행정기구는 해당 지역 공산당 서기가 실력자이며 공산당 부서기인 장이 행정을 관리한다.
민주화 요구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민주화 요구도 확대되어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국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거의 없지만, 국외에서는 미국의 화교 매체인 대기원시보가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사설 ‘구평공산당(九評共産黨)’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2010년 중화인민공화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홍콩과 마카오의 일국양제
1997년 영국에서 반환받은 홍콩과 1999년 포르투갈에서 반환받은 마카오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다. 입법부의 일부 의원은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이 자치권은 일국양제라 불리는데 홍콩인들과 마카오인들은 리보실종사건 등의 발생을 보며 지켜지지 않는 일국양제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현재 홍콩같은 경우는 독립을 주장하는 본토주의가 유행할 정도이다.
중화민국(대만)
중화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타이완은 청나라 때 중국의 영토였다가, 일본과 청·일전쟁에서 진 후, 센카쿠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와 타이완반도를 일본에 넘겨줬다가 나중에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전쟁에서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패망하자, 중국영토에 다시 편입되었다. 그러나 1945년부터 49년까지 중국 공산당을 이끄는 모택동(마오쩌둥)과 중국 국민당을 이끄는 장제스(한국명:장개석)두 세력이 국공내전을 하다가 국민당을 이끄는 장제스가 패하여 타이완반도로 내려와 중화민국인 대만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베이징에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1949년 10월 건국하여 정식국가로 인정받았으나, 세계 여러나라들과 중국, 한국 등은 장제스가 타이완 섬에 세운 중화민국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타이완도 원래 중국영토라고 중국정부는 하나의 중국, 중화사상을 내세워 주장하고 있다. 중화민국은 독립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본토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하면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중화민국)의 각각의 정부는 여전히 분쟁 중이다.
행정 및 행정 구역
중앙 행정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행정기관은 국무원으로 즉 중앙인민정부이다. 국무원은 내정, 외교, 재정, 경제, 문화, 교육, 위생, 공공사업 등 행정사무를 조직하고 관리하여 행정결정과 명령을 반포하고, 전국 지방 각급 국가행정기관의 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한다. 국무원은 총리, 부총리, 국무위원, 각 위원회 주임, 각부부장, 심계서 계장, 비서장으로 구성된다. 현재 28의 부서로 조직되어 있다.
행정 구역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은 22개의 성(省)[4], 5개의 자치구(중국어 간체자: 自治区, 정체자: 自治區), 4개의 직할시(중국어 간체자: 直辖市, 정체자: 直轄市), 3개의 특별행정구(중국어 간체자: 特别行政区, 정체자: 特別行政區)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홍콩, 마카오,타이완를 제외한 지역을 중국 대륙(중국어 간체자: 中国大陆, 정체자: 中國大陸; 중국 본토)으로 칭한다.
아래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통치하에 있는 지역이다.
성(省)
간쑤 성(甘肅省)
광둥 성(廣東省)
구이저우 성(貴州省)
랴오닝 성(遼寧省)
산둥 성(山東省)
산시 성(山西省)
산시 성(陝西省)
쓰촨 성(四川省)
안후이 성(安徽省)
윈난 성(雲南省)
장시 성(江西省)
장쑤 성(江蘇省)
저장 성(浙江省)
지린 성(吉林省)
칭하이 성(靑海省)
푸젠 성(福建省)
하이난 성(海南省)
허난 성(河南省)
허베이 성(河北省)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후난 성(湖南省)
후베이 성(湖北省)
직할시(直轄市)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충칭(重慶)
톈진(天津)
특별행정구(特別行政區)
마카오 특별행정구(澳門特別行政區)
홍콩 특별행정구(香港特別行政區)
자치구(自治區)
광시 좡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내몽골 자치구(內蒙古自治區 네이멍구 자치구)
닝샤 후이족 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티베트 자치구(西藏自治區 시짱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사법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직까지 사법부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아서, 사법 절차에서 자백을 얻기 위한 고문, 영장 없는 자의적인 체포 등의 인권 유린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현대법은 1949년 당시 초강대국이던 소련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 소련 법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형성되었고, 1979년 이후 경제 현대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등지의 투자에 발맞추기 위해 새로운 법안들이 통과되고 있다.
대외 관계
소련이 붕괴되고 소련의 지배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진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유 경제 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1950년 5월 9일 스웨덴이 서방 국가로서는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외교에 있어서 특필해야할 것은 분단국가인 중화민국에 대비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스스로를 "중국의 정통한 정부"라고 하고 있는 점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냉전 구조 하에서, 건국 당초에는 완전히 동측 진영에 편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의 중소 대립을 거쳐, 1964년 1월에 프랑스와 수교한 이후,[5]1979년 1월 1일부터 미국과 수교하는 등 서방 측과의 관계 회복을 이루고, 동시에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또한, 냉전 하에 있어서 서방측 여러나라와 소련과의 대립 관계의 미묘한 밸런스의 중간에서 [모호한 표현], "중국을 대표하는 정당한 정부는 중화민국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이다"라는 기정 사실을 서방측의 다수 국가로부터 확인받아 하나의 중국 정책도 성공을 거두었다. 1989년 소련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함으로써 소련-중국 간의 오랜 원한이 종지부를 찍었다. 1978년부터 시작된 경제개혁 이후부터 경제 면에서의 민주주의인 여러 나라와의 관계도 강화하고, 2001년에는 세계무역기구에도 가맹하였다. 우크라이나는 1992년경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한 것으로 보인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타이완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사상을 내세워 타이완을 실효적으로 통치하는 중화민국 정부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화민국을 승인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UN 회원국 중 22개국(바티칸은 준회원국)은 중화민국을 승인하고 있고, 부탄은 중화인민공화국 및 중화민국 모두와 외교관계가 없다. 폴란드는 1949년 10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고, 양국은 10월 7일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었다.[6][7]
대한민국과의 관계
중국은 1949년 마오쩌둥이 천안문(天安門 廣場)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1949년 10월 1일 건국 및 선포를 하고, 1950년 6.25전쟁(한국전쟁)때, 한국군과 UN군이 10월 1일에 단독으로 38선으로 돌파하여 북진통일을 할 수 있던 순간에 10월 25일, 중국 공산군(중공군)의 60만 대군이 밀고 들어오면서 인해전술과 각가지의 전술로 한국군과 UN군에게 막대한 인명, 물자 피해를 남겨주면서 전쟁의 양상이 새로 바뀌어졌다. 대한민국은 6.25전쟁이후, 중국과 국교가 정식으로 단절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덩샤오핑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개방을 추진하면서, 단절되었던 민주·자본주의 국가들과 다시 수교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정부는 1992년 8월 24일자로 국교를 수교하면서 물적 교류가 활발해졌고, 2015년 최근들어 일본의 아베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 우익세력들이 역사교과서를 왜곡과 편찬, 과거사에 대한 부정·왜곡과 영유권 억지 주장으로 인해 중국과 한국이 서로 상호 협력하는 단계로 발전되고 있다.
외교관계 맺기 이전의 관계
북방 정책에 대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은 소련에 비하여 그다지 매력적인 시장은 아니였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과 공식적 관계를 맺기 이전의 대한민국은 합법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한국 사람과 중화인민공화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소련과 비교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정치적으로 더 가까웠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간의 무역량 증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관계의 향상은 더디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북한과 미국간, 북한과 일본간의 중재, 북한, 대한민국, 미국 3자간의 대화를 시작하도록 노력하였다.
상호방문 허용
1980년대 중공민항기 사건 이후,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의 민간 계약은 더욱 활발해졌다. 양국은 1980년대 말이 되면 자유롭게 상호 방문을 허락하여 학술, 언론, 특히 이산가족 교류가 가능해졌다. 200만명에 가까운 한민족(조선족)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한민족(조선족)들은 대한민국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 소동이 중화인민공화국-대한민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예상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억압적인 조치를 도왔다. 이와 반대로, 대한민국은 더욱 침묵했으나 1989년 톈안먼 사건을 부추긴 것도 그렇다고 비난한 것도 아니었다. 양국의 교역은 더욱 증가하고 있었다. 서울에는 중국인 (요우커)들이 많이 오는데, 이들이 많이 찾는 곳은 명동,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롯데월드 등이다.
냉전 붕괴 이후
1989년 12월 냉전 종식이 선언되고, 1989년 5월에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중-소관계가 정상화된 것은 한-중 수교의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소련의 막대한 영향력에서 아래에서 벋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과 서방세력 외에도 대한민국과 수교하기 이른다. 그리고 아울러 노태우 정부의 한-소 수교의 성공이 중화인민공화국에게도 영향을 미쳐 한중 수교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8]1992년 8월에 대한민국은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다. 수교와 동시에 많은 문화교류를 통해서 한류 및 중류(中流)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2008년 4월 27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재한 중국인 및 중국인 유학생들의 폭력 사태로 인해 한국인 및 외국인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2008년 중국인 성화봉송 폭력시위 사건) 이 때문에 각국 사이에 반한·반중 감정이 생겨나는 등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對)중화인민공화국 수출은 1168억3783만USD, 중화인민공화국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715억7360만USD(각 2010년)에 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1의 수출, 수입국이다. 한편, 대한민국의 대(對)홍콩 수출은 252억9434만USD, 홍콩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19억4593USD(각 2010년)에 달하여, 홍콩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4위의 수출국, 제32위의 수입국이다.[9] 양국 사이에는 대한항공이 중국 내 20개 도시에서 26개 노선을, 아시아나 항공은 22개 도시 30개 노선을 각각 운항 중이다. 2010년 8월, 대한항공은 83%, 아시아나항공은 83.6%의 탑승율을 기록했다. 8월 한달 동안, 각각 35만2천명과 29만4천명의 탑승객을 운송하였다.[10] 대한민국 남자들의 국제결혼을 아내의 출신지 별로 볼 때,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여자가 가장 많다. 2000년 3,566건 (전체 6,945건 중 51%)에서 2008년 13,203건(전체 28,163 건 중 46.8%)으로 증가하였다.[11]
북한 5차 핵실험 이후
2016년 9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탄도 미사일 탑재용 소형 핵탄두를 최초로 핵폭발 실험을 하면서, 한반도 사드 배치(THAAD)가 가속화 되었다. 2016년 12월 방한한 천하이 중국 외교부 부국장은 한국 외교부의 연기 요청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입국한 뒤,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냐"며 한국의 위상을 폄훼했고, 또 "너희 정부가 사드 배치를 하면 단교 수준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12][13]
2017년 1월 9일, 중국 폭격기 등 군용기 10여대가 사전 통보 없이 대한민국 제주도 남방 이어도 인근 동해상에 진입하자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가 급출격해 맞불 대응에 나섰다. 중국 군용기들이 대한민국 제주도 남방 이어도 인근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대거 기습 침범하며 동해에 진출한 것에 대해 중국 관영 매체가 중국군이 커져서 활동 영역의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14]
한반도 사드 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중국이 러시아판 사드를 도입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북한 핵도발 대응책인 한국 사드에 보복하고 있다. 러시아가 개발한 사드 S-400은 미국의 사드와 매우 유사한 러시아판 사드이다. 대한민국 전역을 감시할 수 있는 레이다망에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은 물론, 스텔스 전투기까지 요격할 수 있다. 중국은 러시아판 사드 2개 포대를 도입해 2017년부터 실전 배치한다.[15] 레이다망 사거리가 400km로 미국판 사드보다 길어서 한반도와 대만 인근에서 작전을 하는 미국 스텔스 전투기를 위협한다. 러시아판 사드가 중국 산둥반도에 배치 된다면 유사시 한반도 지역에서의 한미 군용기 활동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16] 한반도 사드 배치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중국이 국가의 주권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러시아판 사드를 실전 배치 한 것이다.[17]
중국은 러시아판 사드 S-400을 1포대를 2017년에 도입할 예정이고 S-400의 중국판인 HQ-19도 자국의 기술로 개발 중이다. 중국이 대한민국 전역을 감시할 수 있는 러시아판 사드를 실전 배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북한 핵도발 대응책인 한반도 사드 배치를 중국이 반대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18][19]
일본과의 관계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의 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인해 소원하였으나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위해 서로 협력을 꾀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는 과거사 문제와 체제 문제 때문에 정상 수교를 맺는데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미국-중화인민공화국의 접근에 자극을 받은 일본 국내에서는 일-중 국교 수립을 위한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기본적으로 대중 자세를 바꾸지 않았으나, 이윽고 자민당의 총재 선출에서 일·중 국교정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다나카 가쿠에이가 승리하였다. 다나카 총리는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과 함께 1972년 9월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과 회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는 것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이로써 타이완의 중화민국과는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국교 정상화에 즈음하여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일본측은 "전쟁을 통하여 중국 국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끼친데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서술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 측은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의 포기를 선언하였다.[20]
2006년 10월의 아베 총리의 방중 때에, 일-중 간에는, "전략적 호혜관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합의되었다. 공통의 전략적 이익에 기준을 둔 호혜관계가 그것이다. 종래, 일-중 간의 관계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전략"이라고 하는 표현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특기할 만 하다. 양국이 "전략"이라고 하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합의한 배경에는 일-중 관계를 2국간관계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대국적인 관점에서 구축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중 양국이 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함께 건설적인 공헌을 할 것을 통하여, 공통 이익을 확대시키고,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전략적 호혜관계"는 2007년의 원자바오 총리의 방일, 후쿠다 총리의 방중, 2008년의 후진타오 방일에서도 이어지고 있어, 중일관계의 기본축이 되고 있다.[20] 2009년 4월에 중국 전역에서 개봉한 《난징!난징!》과 《라베일기》두 편의 전쟁영화가 극장가 흥행열풍을 주도하면서 중·일 양국의 외교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영화는 모두 난징 대학살을 소재로 삼고 있다.[21]
외교 문제
- 영토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가 각각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화민국도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가 타이완 성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도의 아루나찰프라데시 주 북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인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점령한 아크사이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중화인민공화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중화민국도 아루나찰프라데시와 아크사이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어도와 파랑초: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는 이어도와 파랑초 문제가 놓여 있다. (중국 이어도 도발)- 기타 영토 문제: 그 외에도 남중국해에 있는 남사군도와 서사군도 문제도 있다. 예전에는 소비에트 연방과 중소 국경 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1991년 5월 16일에 체결된 중소 국경 협정으로 양측은 이들 섬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라는 것에 합의했다.
백두산 일부 지역: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에 있는 백두산 일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영유한 일부 지역에 대해 대한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면서 북한 땅을 흡수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각각 상대방의 영토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 역사 분쟁
둥베이(동북공정):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 동북공정이 대표적인 외교 분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갈등: 중화인민공화국은 베트남, 몽골 등 주변의 이웃 국가와도 역사 문제로 서로 대립하고 있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은 내몽골 자치구에 칭기스칸의 묘를 만들어 몽골의 역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타이완 문제: 타이완 문제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대외 정책
1970년대 이전, 국제사회가 공산주의 혁명과 전쟁의 시대에 놓여있다고 인식하고 전쟁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오쩌둥 중심의 대외정책이 그런 상황에서 우방인 소련과의 전쟁을 막기위한 동맹정책이었다면, 마오쩌둥 사망부터 1991년 소련 붕괴 전 덩샤오핑와 장쩌민 중심의 대외정책은 국제사회가 평화의 발전 단계에 놓여있으며 전쟁은 피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독립자주 비동맹정책을 고수하는 대신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국가이익을 중시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소련 붕괴 이후 기존의 군사적 위협보다 정치, 경제, 사회적 위협이 증가하자 장쩌민은 전통적 안보위협요인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안보관이 아닌 신안보관을 주요 안보정책의 기조로 활용하게 되었다.
군사
헌법상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는 국가(정부)의 군대가 아닌 당의 군대이다. 따라서 군대의 정식 명칭은 ‘중국군’이 아닌 ‘중국 인민해방군’이다. 과거에는 징병제였으나, 현재는 경제발전과 인력의 고급화로 인하여 실질적인 모병제로 운용하고 있다. 현역병이 2,285,000명이다. 전차 7,470대, 전투기 4,092대, 전함 562척을 보유하고 있다. 조만간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군사력 순위 2위의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은 러시아의 T-72를 개량한 '99식'전차를 주전차로 사용하며, IL-28이라는 구형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다. 숫자만 많고 약하다고 무시당하던 중국인민해방군은 현대화로 해군·공군 및 사이버·위성 전력을 크게 확대하고 러시아의 쿠즈네초프 항공모함을 사들여 강력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 일본, 중화민국, 필리핀, 베트남 등은 국가안보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경제
경제사
덩샤오핑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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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유사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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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시기
중화인민공화국은 농업을 중심으로 한 대생산국으로 특히 1949년 정부수립 후 각종 산업의 생산고가 점차 증가일로를 걸어왔다. 제2차세계대전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산업·경제의 발전단계는
- 1949~52년의 경제부흥기
- 1953~57년의 제1차 5개년계획기
- 1958~60년의 제2차 5개년계획기 (2년 앞당겨 달성)
- 1961~63년의 조정기
- 1966~70년의 제3차 5개년계획기
- 1971~75년의 제4차 5개년계획기
- 1976~85년의 경제발전 10개년계획
을 착수했으나 결함이 노출되어, 1979~81년의 경제조정기를 거쳐 1986~90년의 제7차 5개년계획에 이어 2010년까지 제9차 5개년계획에 들어갔다.
경제부흥기
이들 각 시기의 특징은, 경제부흥기에는 1952년에 이미 전전의 최고생산고에 도달하여 문자 그대로 경제재건에 성공했고, 제1차 5개년 계획기(1953~57년)에는 소련의 원조로 중공업의 확충이 단행되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말기에는 (a) 중공업의 중시와 농업의 경시, (b) 중공업 편중, 경공업 경시, (c) 대규모화·기계화의 무리한 목표설정에서 오는 자금의 낭비와 국내기술의 부실, (d) 공업의 내륙편중 등의 결함이 노정되었다.
대약진 운동
1958년에 시작된 제2차 5개년계획(대약진운동)에서, 마오쩌둥 전 주석의 정책으로 계획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경제부흥기의 미해결문제의 해결을 위해 (a) 농업과 지방공업, (b) 경공업과 중공업, (c) 중앙공업과 지방공업, (d) 대규모 공업과 소규모 공업, (e) 재래식 생산과 외래식 생산의 조화를 지향했고, 이 기간중 공업생산 증가율은 40%에 달했다. 그러나 공업발전은 내용적으로 극히 불건전하여 (a) 생산품이 품질조악으로 사용가치가 적었고, (b) 재래식 생산 방식은 원료, 노동력, 연료의 낭비를 초래했고, (c) 기술문제가 등한시되었기 때문에 사고의 발생률이 높았으며, (d) 공업부문의 균형적 발전이 저해되었다.
인민공사
농촌을 현대화시키기 위해 1958년부터 인민공사가 조직되었다. 소위 대약진기라는 이 시기에 이어 1959~61년에 걸친 연속적인 자연재해로 인민공사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어 농업생산은 크게 줄고 공업원료는 부족하여 경공업생산도 그 파급으로 타격을 입는 등 농·공 사이의 균형이 크게 문제가 되고 게다가 1960년 7월 국경 분쟁으로 인한 중·소대립의 악화로 소련의 공업전문가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소련의 무상원조, 자재지원도 중단되어 심각한 경제위기가 찾아들었다.
경제조정기
그래서 1961년부터는 경제조정기가 시작되어 농업재해, 대약진의 실패, 소련의 원조중단 등에서 온 위기를 극복하는 데 노력이 집중되었다. 1961년에는 조정·공고화·충실·생산제고 등의 목표로 정책이 전환되어 공업의 규모는 대폭 축소되었다. 1962년부터 농업생산이 호전하여 경제 전반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는 농업, 경공업, 중공업의 순차적인 발전이 도모되어 공업의 위치가 2차적인 것이 되었으며 공업구조 내부의 조정이 중시되었고, 농업 지원도의 재고로 공업의 내적 충실화가 모색되었다.
현대공업체제
3차 5개년계획(1966~70년) 실시 이후 독립되고 거의 완전한 근대공업체제의 건설단계에 들어갔다. 1967년 이후 홍위병 난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종 산업, 특히 광공업 부문에서 생산이 상당히 저하했다. 중국의 산업건설의 기본방향은 농업을 기초로 하고 광공업에 선도구실을 시키려는 것인데, 1968년 이후 홍위병 난동이 수습단계에 들어가면 생산도 다시 호전의 기미를 보였다.[22] 결국, 국가 성립 후 1970년대 중반까지의 경제는 대약진정책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에 의하여 뒤떨어져 있었다.
개혁개방
1978년에는 경제발전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4개 현대화에 착수했으나 각종 누적된 결함이 노출되어, 1979년 조정방향이 설정되면서 본격적인 개방과 개혁정책이 추진되었다. 1980년초에는 기업의 자율화, 외국기업의 투자 보강, 금융의 자율화, 세제 도입 등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한 후, 1984년 대규모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1985년 인플레와 과열경기현상이 나타났고, 1986년 4월 안정과 균형에 기저를 둔 지속적 성장을 목표로 한 제7차 5개년계획(1986~90년)을 채택했다.[23]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중화인민공화국(中)의 요청에 오랫동안 중국 경제 원조를 하였다. 이를 경제원조(援助)라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오랜 시기동안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경제원조를 받으며 경제성장을 해왔다.[24]
세계의 공장
덩샤오핑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제도 도입 등의 개혁 개방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경제는 급속히 발전하여 ‘세계의 공장’이라고도 불리고 있다.[25]세계무역기구(WTO)의 발표로는, 2003년의 대 중국 직접투자는 535억 달러가 되어 미국을 제치고 실질적으로 세계 최대의 직접투자 수입국이 되었다.[출처 필요] 세계 최대의 인구와 강한 경제력 덕분에 중국 경제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 국내 노동자들은 연안부나 대도시 근교를 제외하면 지방 인민의 대다수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동일한 정도의 빈민층이며, 농업을 할 수 없는 계절에 도시 지역에 유입되어 객지에서 노동하고 있다.[출처 필요] 그들은 매우 저렴한 임금으로 도시 지역에서 일하기 때문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값싼 노동력을 목적으로 미국, 서구나 대한민국·일본의 기업 진출도 번성하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도 대한민국에 무역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출처 필요]
현재 경제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점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8.5%로 예상하였다. 다른 나라인 인도 역시 경제성장률을 6.3%로 큰 폭으로 예상하였다.[출처 필요]
농업
지역별 농업
중화인민공화국의 국토는 신석기(新石器) 시대에 이미 경작되어 있었고, 경지도 널리 분포해 있어 각지의 토지 이용이나 농업 경영방식은 지역별 자연조건이라든가 사회환경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중국인 학자들과 함께 치밀한 현지조사를 한 로싱백은 화이허(淮河)와 친링(秦嶺)선에서 수도(水稻)지역과 소맥(小麥) 지역으로 크게 둘로 나누고, 나아가서 다시 소맥지역을 창장(長江)수도 소맥구, 쓰촨(四川)수도구, 수도·차(茶)구, 서남수도구, 수도 2기작구(二期作區)로 세분하고, 한편 북부의 소맥지대를 겨울보리·수수구, 겨울보리·조구, 봄보리구로 구분했다.
전통적인 농업방식
이러한 지역구분은 주변 지대로의 확대도 가능하여 동북지구를 콩·수수구로 보고 내몽골 지방과 티베트 및 칭하이(靑海) 지방을 목축구로, 타이완과 하이난섬(海南島)을 2기작구로 볼 수도 있다.종래 중화인민공화국의 농가는 주로 자급용기의 곡물과 콩 종류를 재배하고, 여력이 있으면 판매용 작물을 길렀다. 수도(벼)는 기온이 높고 강우량이 많은 화이허 이남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특히 광둥·푸젠(廣東·福建) 양성(兩省) 연해 지방은 이모작(二毛作)이 가능하다.
쌀
쌀의 총생산량은 17,825만t(1994년 기준)으로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제2위이지만 국내소비가 많기 때문에 수출은 소량이다.
밀
소맥(밀)은 중국본토 북부와 동부지구 북부를 중심으로 하며 화이허와 양쯔강에 연하여 평야지대에서도 제2기작으로서 재배된다. 산시(陜西), 산시(山西) 북부에서 옌산(燕山)산지 북서에 걸치는 지방에서는 기후가 한랭한 관계로 춘경보리가 재배된다. 총생산 3,200만t(1994년 기준)으로 만주, 바오즈 등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된다.
고구마
고구마는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허난(河南)에서 재배되고 조, 수수 등은 동북과 화북의 평야 및 쓰촨(四川) 분지에서 많이 산출된다.
옥수수
옥수수는 랴오둥반도, 황하 이북의 후베이(湖北)평야, 산시·산시의 남부에서 쓰촨에 걸치는 지대에서 많이 나는데 식량과 사료로 쓰인다.
콩
콩은 둥베이 평원과 산둥 반도에서 많이 나오는데 총생산고는 약 1,212만 t이다.면화는 랴오허(遼河) 하류의 평야에서부터 후난(湖南), 쓰촨, 구이저우(貴州)의 각 성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해 있으며 허베이 평야지대, 산시·산시의 남부, 후난, 장쑤(江蘇), 안후이(安徽), 후베이(湖北)의 제성이 그 생산 중심이 되어 있다.
면화
면화는 관개작물로 결실기의 건조한 기후가 양질의 작물을 낳는다.
가축
가축은 돼지, 닭, 오리 외에 노력과 배료원으로서 나귀, 노새(밭농사지대), 소, 물소(수전지대), 말(초원지대) 등이 많으며 양은 식육 및 모(毛) 자원으로서 동북지구, 내몽골 지방, 신장·위구르 지방, 티베트 등 변경 지대에서 많이 사육된다.[26]
문제점
중화인민공화국에는 고도 경제 성장의 이면에, 농업의 저생산성, 농촌의 황폐, 농민의 저소득이라는 3농 문제가 심각하여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도시와 농촌의 수입격차가 계속 확대하면서 토지 수용에 과한 쟁의도 빈발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농업생산진흥책과 농업세의 폐지 등에 열의를 보여서, 2007년 3월의 제10기 전인대 제3회 회의에서는, 물권법을 제정하여 토지사용권의 물권화를 인정하고 농촌대책비를 긴급 증편하여, 농촌의 의료와 교육에 대한 보조금의 증액을 결정하였다.
공업
2차대전 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업 분포는 일본이 지배했던 동북지구와 함포(艦砲) 외교 아래 열강이 투자한 연해 지역·대하천 유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중일 전쟁이 1937년에 발발하면서 국방상의 배려로 공업이 내륙지방으로 소개되고, 또 전후에는 공업의 적정재배치가 단행되어 종래의 공업 편재상은 상당히 수정되었다. 전전 동북지구의 안산 벤시후를 비롯해 허베이, 산시, 쓰촨, 후베이 등지가 중심이 되었던 제철·제강업은 전후 기간산업으로서 중요성을 더하여 우한(武漢), 바오터우(包頭) 등지에 거대한 철강공업 기지가 신설되었다. 중기계공업을 보면, 광산·야금기계가 타이위안(太原), 선양(瀋陽), 치치하얼(齊齊哈爾) 등지에서, 발전기가 상하이(上海), 하얼빈(哈爾賓) 등지에서, 그리고 정유기계가 란저우(蘭州)에서 제조되고 있다. 중형 기계공업으로는 방직기계가 유위츠(楡次), 상하이, 칭다오(靑島) 등지에서, 조선(造船)이 뤼다(旅大), 상하이 등지에서, 철도 차량이 뤼다, 치치하얼, 칭다오 등지에서 자동차가 장춘(長春), 뤄양(洛陽), 정밀기계가 상하이, 하얼빈, 샤먼(廈門), 염료·의약품이 상하이에서, 비료가 난징(南京)에서 생산되고 있다.전전(戰前)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업은 경공업 위주였는데 특히 방적업이 성한 톈진(天津), 칭다오와 면방직이 성한 상하이, 우시(無錫), 난퉁(南通) 등 양쯔강 연안의 여러 도시가 그 중심이 되어 있었다. 전후(戰後) 상하이의 면방직공장이 확충되고 면화지대인 스자좡(石家莊), 한단(邯鄲), 정저우(鄭州), 시안(西安), 셴양(咸陽), 우한(武漢), 우루무치(烏魯本齊) 등지에 대공장이 건설되는 등 내륙의 원료 산지로의 공업 진출이 활발하다.식품공업은 전전 상하이, 칭다오 등지가 중심이 되어 연초가공, 제분, 육류가공, 양조 등이 성했는데 전후에는 유류(乳類)를 가공하는 대공장이 하이라얼(海拉爾), 시닝(西寧)에, 육류가공공장이 우한(武漢)·청두(成都)에 건설되고 또 상하이로부터 이전한 방푸(蚌埠)의 일용품공업이나 뤄양(洛陽)의 제분·착유공업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동북지구는 유지·제당, 본토 북·동부는 제분·연초·유지·남부는 제당으로 각각 알려져 있다.[27]
무역
2017년 기준으로 중국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미국 (19.01%), 홍콩(12.34%), 일본(6.06%), 한국(4.54%), 베트남(3.16%)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한국(9.63%), 일본(8.99%), 아시아(8.46%), 미국(8.38%), 중국(7.18%)으로 주요 수출입 상대국은 모두 인접 아시아 국가들이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2,263,371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1,843,793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변속기 장치(165,991,555.66달러), 저장 장치(89,690,331천 달러), 전자 부품(74,102,011천 달러), 반도체(68,167,379천 달러), 전화기 부품(51,057,293천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반도체(260,920,122천 달러), 석유(163,820,666천 달러), 철광석,604,641천 달러), 금광석(48,740,696천 달러), 전화기 부품(41,293,629천 달러)이다.[28]
소득 격차
개혁 개방 이후의 활발한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농민과 도시 지역 사람들과의 소득 격차 문제가 있으며, 이는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산주의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한다. 이 빈부 격차 문제는 향후의 중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이며, 새로 출범한 후진타오 정권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농촌과 도시 지역 간의 빈부 격차 문제 해소를 논의하는 등 긴급하게 대응하고 있다. 2005년 3월의 전인대 이후, 후진타오 지도부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의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경제성장의 이면에, 빈부의 격차, 치안, 실업, 부패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되었다. 생활고 및 토지수용이나 독직 등 당국에의 불만으로부터 중국 각지에서 데모와 폭동이 빈발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사태의 악화를 염려하며,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을 중요과제로서 제기하였다. 그 실현을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 시스템을 확립하고, 빈부의 격차의 해소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이해에도 저촉하기 때문에, 그 실현에는 곤란이 뒤따르고 있다.[20]
교통
중화인민공화국의 교통은 1949년부터, 특히 1980년대 초반부터 크게 발전하였다.
공항, 도로, 철도 건설은 2010년대에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운송 수단으로서 중요한 철도는 20세기 중반이래 2배의 길이로 늘어났고, 전국을 잇고 있다. 주요 대도시들은 전철 시스템을 운영 또는 건설중이거나 계획 단계에 있다. 고속도로와 도로 체계도 급속히 성장하였고 그 결과 중국 전역에서 자동차도 급속히 증가하였다. 중국의 교통 체계는 방대한 국토에 걸쳐 넓은 교통 교차점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으나, 교차점들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발달한 해안 지대와 주요 강을 따라 발달한 도시들에 집중되어 있다. 중국 교통 기반시설의 물적 상황과 그 이용 실태는 지리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골 지역에서는 아직도 비기계적인 운송 수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반면, 상하이와 푸동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자기부상열차도 건설되었다.
티베트의 말과 중국의 녹차를 주로 교환한 것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차마고도 (윈난 성 ~ 티베트)도 지금은 국도와 고속도로, 티베트 철도로 대체되어, 이제는 관광객들이 일부 이용할 뿐이다. 현재 중국의 교통 체계의 상당수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은 현재 교통 인프라의 업그레이드를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까지, 중국의 경제는 인프라 개발 부족에 불구하고, 교통 인프라를 개발할 여력이 부족했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 정부는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물자를 수송하고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세계 은행의 1990년대 중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로 인하여 손실되는 물류량이 중국 GDP의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물류 비용은 생산 원가의 20%로서 미국의 10%, 기타 선진국의 5%와 크게 대비된다. 중국의 항구는 수로의 이용을 위해 크게 개선되고 있으며 공항 설비도 향상되고 있다. 건설 장비, 엔지니어링, 콘테이너 보안, 전자산업, 안전 도구와 같은 교통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철도는 동북지구와 북부에 편재해 있다. 철도는 중국에 있어서 현대 운수의 근간을 이룬다. 중국 철도의 총 길이는 2009년에 86,000km로 연장되었다. 철도 밀도는 89.6km/10,000km2로, 이웃한 대한민국에 비하여 0.29배에 불과하다. 여객 수송은 연간 215억명/km, 철도선은 60여개를 헤아리고, 수송량은 전수송량의 85%에 이르고 있다. 새로운 도로의 적극적인 건설로 1978년에는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한 도로의 총연장이 89만km에 이르렀다.[29] 항공 교통이 1990년대 말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철도 교통은 여전히 가장 이용객이 많은 교통 수단이다. 1990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노력으로 중국의 고속도로는 2009년 기준으로 65,000km를 넘는다.[30] 이것은 길이 기준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수치이다.
1,200여개의 하천은 예로부터 가장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고 경제적 동맥이 되어 왔으며, 특히 창 강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부터 중국에서 남선북마(南船北馬)라 일컬은 것은 창 강 수계가 차지하는 경제적 의의를 설명하는 것이다. 수나라 때부터 화중의 농산물을 화북으로 운송할 목적으로 건설된 대운하는 현재는 국부적으로 이용될 뿐이고, 남북간의 물자 수송은 경한선·진포선 등의 철도로 하고 있다.[31]주 강, 쑹화 강도 주요한 하천이다. 1956년 중국의 민간항공로의 총 연장은 1만7,194km 였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모스크바, 평양, 하노이, 양곤, 울란바타르 등지에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고 국내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항공망도 정비되어 있다. 영토가 광대한 중국에서는 항공 발전은 큰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철도편으로 10~15일이 소요되는 베이징 우루무치간의 거리는 항공로로 8~10시간이면 갈 수 있다.[32] 중국과 대한민국 사이에는 대한항공이 중국 내 20개 도시에서 26개 노선을, 아시아나 항공은 22개 도시 30개 노선을 각각 운항 중이다. 2010년 8월, 대한항공은 83%, 아시아나항공은 83.6%의 탑승율을 기록했다. 8월 한달 동안, 각각 35만2천명과 29만4천명의 탑승객을 운송하였다.[10]
사회
공휴일
설날, 청명, 노동절, 단오, 추석, 국경절 등에 연휴[33]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노는 것도 아닌 게 바로 전이나 그 다음 주말에 출근하는 대체평일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영토가 매우 넓은 대신 비행기 등을 이용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적어서 연휴를 짧게 하면 고향 방문이나 여행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에 연휴를 길게 하는 대신 주말근무로 때우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인구와 주민
중국 전체의 인구는 2015년 말에 13억 5569만 명이다. 인구의 55.6%(2015년)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인구증가율은 0.52%(2010년~2015년)이며 1995년 이후 1% 미만의 낮은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다.
유엔추계에 의하면 2050년에 약 16억 명의 최고점에 도달하고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1979년부터 인구 억제책으로서 한 부부에 한 자녀라고 하는 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1자녀 가정에는 장려금, 학교에의 우선 입학 등의 혜택이 주어지나, 위반한 자에게는 반대로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서는 다(多)자녀가 다복이라는 전통적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강하여, 정책이 형해화된 지역도 많다. 중위 연령은 37.0세이며 2015년 노인 인구 비율이 9.55%로 고령화 사회에 해당한다.
2040년경에는 65세 이상의 노령 인구가 20%에 달하고, 초고령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것을 반영한 것인지, 정부는 2002년 9월 1일에 "인구와 계획 출산법"을 시행하여, 조건부로 1자녀 정책을 완화하였다.[20]
[34]중국은 56개 민족이 거주하는 다(多)민족 국가이다. 한족(漢族)이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55의 소수 민족 56개 족들이 8%를 차지하고 있다. 소수 민족 중 인구가 100만 명 이상인 민족은 좡족(壯族), 몽골족(蒙古族), 조선족(朝鮮族), 티베트족(藏族), 위구르족(維吾爾族), 만주족(滿洲族, 滿族), 후이족(回族) 등 18개 민족이다. 반대로 뤄바족(珞巴族) 등 인구가 3천 명 이하인 민족이나, 민족을 구별할 수 없는 73만 명(2000년 시점)의 사람들도 있다. 어뤄스족도 있는 편인데, 이들은 러시아계의 후손이다.
소수 민족은 주로 동북(東北), 서북(西北), 서남(西南), 각 자치구의 스텝이나 산악 지대, 고원에 살고 있으며, 이들의 거주지는 중국 전 국토의 60% 이상이다.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성(省)은 서남부의 윈난 성(雲南省)으로, 35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오늘날에는 1970년대 말부터 시행된 개혁, 개방 정책과 1997년, 1999년의 홍콩, 마카오 반환 등으로 말미암아 56개 민족 이외의 민족도 상당수 거주한다.
전통적으로는 부계 중심의 가족, 확대 가족이며 조상 숭배를 강조한다. 아들의 출산을 통해 가족의 혈통을 계승하려 한다. 효도를 중시하며, 결혼은 가문의 관심사이자 대(代)를 잇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핵가족화 추세이나 농촌은 대가족 제도를 계속 유지한다. 연애 결혼과 중매 결혼이 공존하며, 가족 중심적이고 이혼율이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보다는 낮은 편이다.[35]
언어
중국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공용어는 표준 중국어(普通話)로, 중국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다. 표준 중국어는 중국 대륙 뿐만 아니라 타이완이나 국외에서 거주하는 화인(華人)들도 사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사용자가 많은 언어가 되었다.
중국어는 여러 가지 방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북방방언(北方方言), 오어(吳語, 상하이어 등), 광둥어(廣東語), 푸젠어(福建語), 객가어(客家語)의 5개로 대별되며 그 방언들 간에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중국 전 지역에서 통용되는 표준 중국어는 베이징화(北京話)의 발음을 표준음으로 하고 북방어를 기초로 하여 현대백화(現代白話, 구어)의 문장을 문법 규범으로 하고 있다.
중국어를 표기하는 한자는 총 6만 자 가량으로, 그 중 2,500자가 상용한자로 선정되어 있다. 한자 간략화 정책 때문에 중국 대륙에서는 대한민국의 한국어 한자(정자; 正字)와 다른 간체자(簡體字)가 통상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56개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으나 98%는 중국인 한족(漢族)으로 소수민족의 인구는 매우 적다. 한족(漢族)의 비율이 98%가 되기 때문에 중국은 한족(漢族) 단일 민족으로 봐도 무관하나 신분증 표기에 소수민족과 한족(漢族)의 구분이 되게 표기되어 있으며 중국은 사실상 외국인의 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소수민족이 될 수 없으며 원래 살고 있던 매우 적은 인구의 소수민족들이 신분증에 표기되어 있다. 소수민족은 대부분 각 민족 언어와 북경어(표준 중국어)를 병용하지만 인구가 적어 북경어를 사용한다. 소수 민족 언어로는 좡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등이 널리 쓰인다. 그중에는 극 소수의 인구인 나시족(納西族)의 동파 문자(東巴文)와 같은 표의 문자도 있다.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 일본어 등이 널리 사용되며, 1990년대 말에 반환된 홍콩, 마카오에서는 중국 대륙의 공용어인 표준 중국어뿐만 아니라 광둥어와 영어(홍콩), 포르투갈어(마카오)도 공용어로 지정되어 사용되고 있다.
교육
국가 전체의 문맹률은 미국 CIA 조사를 따르면 약 9.1%로, 중간 이하이다. 도시 지역에서는 문맹률이 많이 낮아졌으나 티베트 자치구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 서부 지방에서는 아직도 문맹률이 높다.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국민들의 의무 교육 기간을 초등학교[36] 까지의 6년에서 9년(중학교[37]까지)으로 확대하였다. 학년은 9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7월쯤 끝난다. 중국에서는 고등학교 수학에서 미적분을 아예 다루지 않고 있는 대신 복소평면과 역삼각함수를 다루고 있다. 또한 중국의 대학 입시는 가오카오라고 부르며, 고급중학(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 3학년 말인 6월 7일과 6월 8일에 치른다. 과목은 어문, 수학, 문과종합, 이과종합, 외국어.
언론
미국 프리덤하우스는 중국의 언론 지수에 0점을 주었다. 즉 언론의 자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완전히 편향적이라는 것이다.[38]
통신
국영통신으로는 신화통신이 있다.
신화통신은 1931년에 장시 성 루이진에서 '홍색중앙통신사'로 처음 발족했고, 1934년에는 대장정에 마오쩌둥과 함께 올랐으며 1937년에는 옌안에서 '신화통신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에 이른다. 이곳은 《인민일보》, 중국중앙방송의 기사를 보내고 있다. 또 이 통신사에서 발간하는 간행물로는 《신화매일전신》, 《참고신문》, 중국신화방송 등이 있는데, 《참고신문》은 주로 공산당원이 많이 읽는다.
신문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적인 신문은 《인민일보》로써,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이다. 이 신문은 1948년에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당보인 것처럼 중국공산당의 입장, 정책설명, 당의 공보 등을 발표하고 있으며, 영어판과 한국어 서비스를 비롯해 7개의 외국어판을 발행하고 있다. 이 외에 《해방군보》, 《광명일보》, 《공인일보》를 발행하며, 《중국일보》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문판 일간지이다. 외국어판 신문인 《베이징타임스》는 재미있는 기사와 강렬한 천연색 사진을 편집하여 외국인과 중국인에게 많은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방송
방송은 국영방송인 중국중앙방송(CCTV)과 북경TV방송, 홍콩스타TV방송 등이 있으며, 중국중앙전시대는 원래 광고편성을 하지 않았으나, 1980년대에 광고를 시작했다. 중국정부에서는 언론을 검열하므로 BBC를 들을 수 없다.[39]
환경
중국 각지에서 대기오염, 수질오염, 고형 폐기물, 소음, 사막화, 산성비, 물부족 등의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되었다. 1973년에 제1회 전국환경보호회의가 개최된 이래, 환경보전에 대한 조직적 대응이 시작되어, 1979년의 환경보호법(시행) 채택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1983년에는 환경보전을 기본 국책으로 위상을 높였다. 1988년에 환경보호법이 수정되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에게 벌칙이 강화된 이외에, 1997년의 형법 개정으로 자원환경파괴죄가 신설되었다. 또한 1998년의 국무원 개혁으로 1984년에 설치되었던 국가환경보호국이 국가환경보호총국으로 격상되었고, 2008년 3월에는 환경보호성으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는 의연히 악화경향에 있다. 이것은 환경개선에의 기술적, 자금적인 문제도 있으나, 환경보호단체를 비영리단체로서 조직하는 것이 규제되고 있는 등, 일반시민에게 환경보전의식이 침투하기 어렵다고 하는 정치체제에 기원하는 것도 크다.[20]
사회문제
성매매
한국인 남성과 즐기기위해“명문대 여대생, 모델, 여자 공무원, 외자기업 직원 등 다양한 직업과 10대 연령대 여성들까지 제발로 매춘을 하러 온다" 라고 말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은 매춘이 중국인 여성 전계층에 확산되자 섹스 산업을 근절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40]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의 중국 여자(中国女性)들은 한국인남자(韓國人男性)사업가들에게 원조(援助)를 받으며 원조교제(援助交際)를 해왔다. 또한 한국남성(韓國男性)과 원조교제(援助交際)를 하려고 중국여성(中国女性)들이 카라오케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을 抗贫乏援助中国女交際战争이라고 부른다.중국에서는 한국인 남성이 VIP라고 할 정도로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교한 1992년부터 많은 한국인 남성 사업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의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등 각지에서 사업을 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여성들은 한국인 남성 전용 KTV(카라오케)에서 한국인 남성들의 접대부로서 성매매(賣春)을 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다다랐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여성들이 골프를 빙자로 많은 한국인 남성들과 기생관광매춘을 즐기고 있으며 상하이의 KTV에서는 한국인 남성 고객을 위해 인근 골프장까지 부킹까지 서비스를 하고 있다.[41][42]
문화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문화재가 중국 영토 곳곳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
종교
1982년 제정된 〈공산주의 종교법〉에서 중국 정부는 인민들과의 협조를 위한 공산당원의 종교 활동을 인정하는 등 종교 활동에 대한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43]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선교 활동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불교, 도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등 5개 제도성 종교(制度性宗教)는 각각 중국불교협회(中国佛教协会), 중국도교협회(中国道教协会), 중국이사란교협회(中国伊斯兰教协会),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 중국천주교교무위원회(中国天主教教务委员会), 중국천주교주교단(中国天主教主教团),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中国基督教三自爱国运动委员会), 중국기독교협회(中国基督教协会) 등 8개 관방 종교 단체로 통합되어 있다.
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은 자치(自治, 스스로 다스림), 자양(自養, 스스로 키움), 자전(自傳, 스스로 전파시킴)을 중점으로 하는 삼자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는 외세를 배격하는 자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이다.
불교
천주교
로마 교황청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다. 2006년에는 쉬저우 교구장인 천위룽 주교가 로마 교황청과의 협의없이 천주교 주교 서품을 집전하여 교황청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44]
현재 중국 공산당에서 인정하는 천주교 단체는 다음 3개이다.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 약칭 애국회) – 중국 공산당의 영도에 따르는 천주교회 단체이다. 1942년부터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던 로마 교황청은 국공 내전 이후인 1951년에 중국 공산당이 주중 교황사절을 추방하고 천주교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자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들었으나, 중국 대륙에서의 천주교 전파를 위해 중국 천주교애국협회의 천주교회에 대한 정책을 존중할 생각이라는 피에트로 삼비 바티칸 대사의 말을 예샤오원 중국 국가종교사무국장이 전하는 등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가 어느정도 개선되고 있으며[45] 교황청은 신임 베이징 주교 임명을 승인한 바도 있다. 현재 바티칸 교황청 홈페이지에는 중국어 웹페이지도 개설되어 있다.[46]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없는 중국 내 종교상황에 대한 개선 등의, 중국 공산당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들도 있다.[45]
중국천주교교무위원회(中国天主教教务委员会)
중국천주교주교단(中国天主教主教团)
개신교
양회(兩会)
현재 중국 공산당에서 인정하는 개신교 단체는 다음 2개이다. 삼자애국운동과 중국기독교협회를 중국기독교양회(中国基督教兩会)로 통칭하기도 한다. 주요 정책 발표 등이 공동의 명의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中国基督教三自爱国运动委员会) - 중국 개신교회는 특정한 교파 구분 없이, 1957년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로 통일되었다. 성공회(聖公會)도 여기에 속해있다.[47]
중국기독교협회(中国基督教协会) – 중국 개신교회가 외부와 단절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현재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정교회
기독교양회에 속하지 않은 가정교회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가정교회는 비공인된 것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기독교양회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발전한 토착적인 교리를 중요시하며, 반외세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48] 최근엔 정부에 협력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사교(邪教) 탄압
중국 공안부가 사교(邪教)로 지정해 탄압하는 기독교 계열 종교들이 있다. 널리 알려진 단체로는 호함파(지방교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동방번개) 등이 있다.
일부 단체는 중국내에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한민국으로 전도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외국인의 중국 선교
중국의 법률은 외국 개신교 단체의 중국 내 선교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선교 단체에서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같이 읽기
- 전국인민대표대회
- 하나의 중국
- 중화민국의 외교
- 홍과 전
- 국가자본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상개조(en:Thought reform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중화인민공화국의 검열(en:Censorship in China)
중화인민공화국의 언론매체(en:Media of China)
중화인민공화국의 인터넷 검열(금순공정/만리방벽)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선전(en:Propaganda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환구시보
각주
↑ 일반적으로 베이징 기준의 동아시아로 분류되지만, 영토가 넓어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도 걸쳐 있다.
↑ 보통 중국이라는 명칭은 전세계적으로 중국 영토에서 중국공산당의 직접 통치를 받는 지역, 즉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한 지역으로 통용된다.
↑ 2010년 국제통화기금 기준.
↑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타이완을 23번째 성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타이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 통치 지역이 아니며 현재 중화민국의 영토이다.
↑ 1964년 1월에~: 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1960년편 3권) (2004년, 인물과사상사) 19쪽.
↑ “Major events in Sino-Polish relations”. China Daily. 2004년 6월 8일.
↑ Poland
↑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한-중 수교 (1992.8)”.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2011년 10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7월 11일에 확인함.
↑ “국가별 수출입”. 한국무역협회.
↑ 가나 “중국 노선 탑승률 사상 첫 80% 돌파”. 조선일보. 2010년 9월 6일.
↑ “한국인 남편의 혼인종류/외국인 아내의 국적별 혼인” (HTML). 《국가통계포털》. 2009년 7월 11일에 확인함.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06579&ref=A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777429.html
↑ http://www.sedaily.com/NewsView/1OARK82A4A
↑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2/2017011290206.htm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11/0200000000AKR20161111140400009.HTML?input=1195m
↑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0217001182
↑ http://armstass.su/?page=article&aid=84164&cid=25
↑ http://www.idsa-india.org/an-jan-5.html
↑ 가나다라마 고쿠분 료세(国分良成). 〈中国〉. 《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일본어). 지유고쿠민샤(自有国民社). ISBN 978-4-426-10128-2.
↑ “[국제] 영화 2편 때문에… 중국-일본 신경전”. 《주간조선》. 조선일보사. 2009년 5월 18일. 2011년 10월 1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6월 23일에 확인함.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중국의 산업〉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중국의 전후 경제발전〉
↑ http://odakorea.go.kr/ODAPage_2012/T02/asia/China.jsp
↑ “[금융위기 6개월] ⑥ 흔들리는 세계의 공장 중국”. 2009년 3월 11일. 2010년 10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3월 6일에 확인함.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중국의 농업〉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중국의 공업〉
↑ 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 Worldbank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도로〉
↑ “Chinese highways for fast traffic add up to 65,000 km”. China Daily. 2010년 1월 16일.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아시아의 교통〉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항공로〉
↑ 3일 연휴와 7일 연휴가 있다.
↑ UN 경제 사회국 인구 분과 UN 세계 인구 추계 2015년 판
↑ 고등학교 기술·가정 교과서 '천재교육' 2. 가정 생활 문화 - 세계 여러 나라의 가족 생활 문화 - 중국의 가족 생활 문화
↑ 중국에서는 일본처럼 초등학교를 소학교라고 부른다.
↑ 중국에서는 중학교를 초급중학이라고 부른다. 고등학교는 고급중학.
↑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606_0000673617&cID=10101&pID=10100
↑ 《열정의 편집》/앙드레 쉬프랭 지음/류병훈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52299.html
↑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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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선교 핸드북》/중국 어문선교회 편역/두란노
↑ 중국, 또 천주교 주교일방 임명 한겨레 2006년 11월 30일 이상수 기자
↑ 가나 바티칸-중국 ‘화해’ 급진전 한겨레 2008년 2월 22일 유강문 기자
↑ 바티칸 교황청 중국어 누리집
↑ 절강교구 주교인 정광훈(丁光训)이 주석을 맡기도 하였다.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보관 된 사본”. 2015년 9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4월 16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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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청두 대한민국 총영사관
- 주 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관
미국
- 미국 CIA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자료(영어)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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