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목차 지리 역사 인구 현황 행정 구역 정치 경제 사회 교통 문화 스포츠 예술 관광 외교 참고 외부 링크 둘러보기 메뉴남위 34° 36′ 12″ 서경 58° 22′ 54″ / 남위 34.603333° 서경 58.381667° / -34.603333; -58.381667아르헨티나의 눈물 '반복되는 위기'“보관 된 사본”원본 문서“Sentencia dictada por el Juez Jorge Ballesteros en el juicio penal Olmos, Alejandro c/ Martinez de Hoz y otros s/ Defraudación, del 13 de junio de 2000 (Exte. 14467)”원본 문서IPI, 아르헨티나 미디어 개편법안 비난INDEC과거 내용 찾기아르헨티나총선 `부동층 표심 野로'아르헨티나분류아르헨티나 정부 공식 홈페이지아르헨티나 정부포털아르헨티나 한인회주 아르헨티나 대한민국 대사관주대한민국 아르헨티나 대사관주아르헨티나 중남미한국문화원ehehehehehehehehehehehehWorldCat146499420n790701344002890-2026359537cb11862283g(데이터)339100560367XX5308160DA10147253
부에노스아이레스 특별구가이아나베네수엘라볼리비아브라질수리남아르헨티나에콰도르우루과이칠레콜롬비아파나마파라과이페루과테말라그리스 왕국남아프리카 연방네덜란드노르웨이뉴질랜드니카라과덴마크도미니카 공화국라이베리아레바논룩셈부르크멕시코미국베네수엘라벨기에벨로루시 SSR볼리비아브라질사우디아라비아소련시리아아르헨티나아이티에콰도르에티오피아 제국엘살바도르영국오스트레일리아온두라스우루과이우크라이나 SSR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라크이란이집트 왕국인도 제국중화민국체코슬로바키아칠레캐나다코스타리카콜롬비아쿠바터키파나마파라과이페루폴란드프랑스필리핀가이아나과테말라그레나다니카라과도미니카 공화국도미니카 연방멕시코미국바베이도스바하마베네수엘라벨리즈볼리비아브라질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세인트키츠 네비스수리남아르헨티나아이티앤티가 바부다에콰도르엘살바도르온두라스우루과이자메이카칠레캐나다코스타리카콜롬비아트리니다드 토바고파나마파라과이페루헌장상호원조조약보고타 선언산호세 협약범미주회담미주정상회담가이아나베네수엘라볼리비아브라질수리남아르헨티나에콰도르우루과이칠레콜롬비아파라과이페루스페인멕시코필리핀코스타리카온두라스엘살바도르과테말라니카라과쿠바도미니카 공화국파나마칠레파라과이우루과이페루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볼리비아포르투갈브라질앙골라모잠비크기니비사우카보베르데상투메 프린시페동티모르마카오프랑스모나코코트디부아르세네갈아이티이탈리아산마리노루마니아몰도바안도라아르헨티나바티칸 시국몰타 기사단유럽 연합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러시아남아프리카 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라오스브루나이캄보디아미얀마베트남인도대한민국파키스탄네팔방글라데시오만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스리랑카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몰디브터키몽골이스라엘아제르바이잔조지아키르기스스탄이란아랍에미리트필리핀태국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아프가니스탄말레이시아홍콩동티모르키프로스피지바누아투사모아바레인러시아영국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네덜란드핀란드노르웨이몰타포르투갈아이슬란드스웨덴폴란드덴마크헝가리스페인아일랜드루마니아벨라루스수단이집트에티오피아마다가스카르캐나다쿠웨이트아르메니아레바논통가쿡 제도파푸아뉴기니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페루에콰도르볼리비아칠레브라질남아프리카 공화국알제리모로코리비아가나케냐토고벨기에그리스세르비아체코일본이라크콜롬비아나이지리아우크라이나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베네수엘라멕시코캐나다대한민국아르헨티나터키이탈리아스페인멕시코파키스탄콜롬비아산마리노인도네시아몰타코스타리카가나가봉그리스기니기니비사우니제르도미니카 연방라오스레바논루마니아룩셈부르크르완다마다가스카르말리모나코모로코모리셔스모리타니몰도바바누아투베냉베트남벨기에부룬디부르키나파소북마케도니아불가리아상투메 프린시페세네갈세이셸세인트루시아스위스아르메니아아이티안도라알바니아이집트적도 기니중앙아프리카 공화국지부티차드카메룬카보베르데카타르캄보디아캐나다코모로코트디부아르콩고 공화국콩고 민주 공화국키프로스토고튀니지프랑스
아르헨티나공화국유엔 회원국스페인어권연방제 국가미주 기구 회원국G20 회원국
남아메리카연방공화국부에노스아이레스코르도바바이아블랑카마르델플라타대서양안데스 산맥브라질스페인어부에노스아이레스파라과이볼리비아브라질우루과이칠레남극아르헨티나령 남극칠레령 남극영국영국령 남극남극 조약영국의 해외 영토포클랜드 제도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라틴 아메리카구매력인간개발지수세계은행국민총소득메르코수르남미 국가 연합세계은행 그룹G-15G-20남아메리카 대륙브라질남아메리카볼리비아우루과이브라질파라과이칠레대서양안데스 산맥조인빌 섬아콩카과 산습한 팜파부에노스아이레스주코르도바 주산타페주라팜파주산루이스주건조한 팜파코르도바 주시에라데코르도바 산맥우루과이라플라타 강쇠고기양모밀옥수수그란차코차코주포르모사주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메소포타미아파라나 강우루과이 강코리엔테스주엔트레리오스주이베라 습지미시오네스 주브라질 고원이과수 폭포네그로 강마젤란 해협파타고니아스텝네우켄주리오네그로 주추부트주산타크루스 주칠레티에라델푸에고 제도코마우에안데스 산맥쿠요멘도사주산후안 주라리오하 주시에라팜페아나스 산맥아콩카과 산안데스 산맥카타마르카주투쿠만주살타주칼차키 계곡후후이주남회귀선부에노스아이레스온대 기후코르도바 주산후안 주남반구1월 1일여름그란차코사바나양버즘나무유칼립투스에스탄시아몰리솔스텝국립공원파타고니아비그늘티에라델푸에고 섬침엽수활엽수쿠요선인장재규어퓨마오셀롯고양이과고함원숭이악어맥페커리카피바라들개거북벌새홍학큰부리새제비큰개미핥기아르마딜로팜파스 고양이갈기늑대마라기니피그레아매왜가리과티나무팜파스 사슴팜파스 여우파타고니아라마구아나코비쿠냐비스카차안데스 고양이안데스콘도르퓨마안데스 사슴푸두멧돼지코끼리물범물개가마우지범고래남방참고래정어리만새기연어상어티에라델푸에고 섬송어보아살모사호르네로파타고니아인디오파차쿠텍잉카 제국1480년코야수유과라니족유카고구마예르바 마테농업팜파스17세기마푸체1516년유럽인1542년페루 부왕령1527년파라나 강1536년스페인1580년부에노스아이레스식민지크리오요메스티소아프리카부에노스 아이레스도시가우초파타고니아그란차코1776년페루 부왕령부에노스아이레스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스페인어공용어기독교로마 가톨릭교회종교영국18061807년총독산티아고 리니에르1810년5월 25일페르디난도 7세나폴레옹1차 의회5월 혁명남아메리카 합주국자유 연맹파라과이1811년호세 데 산 마르틴1814년1817년칠레페루1816년7월 9일투쿠만 의회스페인1820년브라질포르투갈1825년볼리비아1826년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1828년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우루과이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연방주의자1852년중앙집권당연방주의자1853년헌법후안 바우티스타 알베르디프란체스코회마메르토 에르키우1865년파라과이1870년대팜파스파타고니아1880년1929년국민자치당1912년로케 사엔스 페냐급진 시민 연맹1916년이폴리토 이리고옌대공황1930년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1946년후안 페론사회교육노동조합노동자에바 페론영부인노동자1947년에바 페론 재단복지복지사랑페론주의 여성당경제학자산업도시1952년로마 가톨릭교회정치1955년쿠데타스페인망명1963년아르투로 일리아1966년1975년경제빈곤억압지식인1973년1974년이사벨 페론1976년3월 24일군사 쿠데타국가 재건 과정더러운 전쟁중앙정보국콘도르 작전1976년 쿠데타국가 재건 과정영국포클랜드 전쟁라울 알폰신군대종신형국제통화기금1989년카를로스 메넴1990년하이퍼인플레이션도밍고 카바요1991년1990년대1998년1999년페르난도 데 라 루아수출2001년12월 20일1890년시위경찰2002년1월 2일에두아르도 두알데채무 불이행인플레이션은행2003년자유사회주의페론주의네스토르 키르츠네르수입대체국제통화기금로베르토 라바냐G20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여성승리를 위한 전선농업2008년2008년7월 16일훌리오 코보스승리를 위한 전선클라린아르헨티나 통계 및 인구조사국오베라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미국이탈리아스페인쿠오레19세기20세기이민메스티소아랍인동아시아피에몬테롬바르드캄파니아칼라브리아갈리시아바스크아일랜드영국독일오스트리아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그리스포르투갈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폴란드헝가리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루마니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아르메니아추부트 계곡웨일스러시아인폴란드인프랑스인독일인이탈리아인에스파냐인베트남박정희아슈케나짐세파라딤보어 전쟁아랍레바논시리아동방 정교마론파유대인무슬림카를로스 메넴후안 페론포클랜드 전쟁마푸체메스티소징병제기독교로마 가톨릭교회개신교유대교이슬람교로마 가톨릭교회2013년3월 14일교황프란치스코그란 부에노스아이레스코르도바로사리오공화제삼권분립국민 투표대통령로마 가톨릭교회양원제보통 선거남아메리카징병제모병제네덜란드막시마 조레귀에타빌럼알렉산더르마르코대한민국농업목축업GNP신자유주의1986년2001년제2차 세계 대전서비스업공업페론철강선박항공기자동차소돼지양양모육류밀옥수수아마면화목초류고구마곡물콩육류밀미국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러시아브라질일본독일기계철강원유미국일본이탈리아독일브라질광업파타고니아석유산니콜라스탱고목축남아메리카박물관미술관극장대학인디오프랑스이탈리아이탈리아스페인이탈리아미국미국중남미대학철도부에노스아이레스남아메리카항공오페라발레연극영화클래식 음악미술중남미축구FIFA 월드컵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1930년 월드컵우루과이1978년 FIFA 월드컵이탈리아스페인루이스 몬티엔리케 과이타라이문도 오르시1934년 FIFA 월드컵1978년1986년 월드컵1978년FIFA 월드컵 결승전브라질독일이탈리아하계올림픽2004년 하계 올림픽2008년 하계 올림픽디에고 마라도나리오넬 메시펠레크리스티아누 호날두리그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2030년 FIFA 월드컵낭만주의부에노스아이레스호세 마르몰도밍고 파스티노 사르미엔토가우초에스타니슬라오 캄포호세 에르난데스레오폴도 루고네스리카르도 구이랄데스마누엘갈베스에두아르도 마예아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마누엘 푸익엔리케 라레타아르헨티나 페소서비스업유럽미국캐나다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칠레콜롬비아코스타리카쿠바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세인트루시아멕시코니카라과파나마파라과이페루브라질우루과이베네수엘라앤티가 바부다바하마바베이도스벨리즈도미니카 연방그레나다가이아나자메이카수리남아이티세인트키츠 네비스트리니다드 토바고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function()var node=document.getElementById("mw-dismissablenotice-anonplace");if(node)node.outerHTML="u003Cdiv class="mw-dismissable-notice"u003Eu003Cdiv class="mw-dismissable-notice-close"u003E[u003Ca tabindex="0" role="button"u003E숨기기u003C/au003E]u003C/divu003Eu003Cdiv class="mw-dismissable-notice-body"u003Eu003Cdiv id="localNotice" lang="ko" dir="ltr"u003Eu003Cpu003Eu003Ca href="/wiki/%EC%9C%84%ED%82%A4%EB%B0%B1%EA%B3%BC:3.1%EC%9A%B4%EB%8F%99_100%EC%A3%BC%EB%85%84_%EA%B8%B0%EB%85%90_%EC%97%90%EB%94%94%ED%84%B0%ED%86%A4" title="위키백과:3.1운동 100주년 기념 에디터톤"u003E3.1운동 100주년 기념 에디터톤u003C/au003E(~4.11) 오프라인 모임이 4월 7일 열립니다.nu003C/pu003Eu003Cpu003E3월 30일 서울에서 u003Ca href="/wiki/%EC%9C%84%ED%82%A4%EB%B0%B1%EA%B3%BC:%EC%98%A4%ED%94%84%EB%9D%BC%EC%9D%B8_%EB%AA%A8%EC%9E%84/2019%EB%85%84_%EB%8F%85%EC%84%9C_%26_%EA%B3%B5%EB%8F%99_%ED%8E%B8%EC%A7%91" title="위키백과:오프라인 모임/2019년 독서 u0026amp; 공동 편집"u003E2019년 독서 u0026amp; 공동 편집 오프라인 모임u003C/au003E이 열립니다.nu003C/pu003Eu003Cpu003E3월 30일 u003Ca href="/wiki/%EC%9C%84%ED%82%A4%EB%B0%B1%EA%B3%BC:%EC%98%A4%ED%94%84%EB%9D%BC%EC%9D%B8_%EB%AA%A8%EC%9E%84/2019%EB%85%84_3%EC%9B%94_30%EC%9D%BC_%EB%8C%80%EA%B5%AC" title="위키백과:오프라인 모임/2019년 3월 30일 대구"u003E대구광역시에서 오프라인 모임u003C/au003E이 열립니다.nu003C/pu003Eu003C/divu003Eu003C/divu003Eu003C/divu003E";());
아르헨티나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아르헨티나 공화국 | |||||
---|---|---|---|---|---|
República Argentina Tetã Argentina | |||||
| |||||
표어 | En Unión y Libertad (통일과 자유) | ||||
국가 | 아르헨티나 국가 | ||||
수도 |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위 34° 36′ 12″ 서경 58° 22′ 54″ / 남위 34.603333° 서경 58.381667° / -34.603333; -58.381667 | ||||
부에노스아이레스 | |||||
정치 | |||||
공용어 | 없음 | ||||
국민어 | 스페인어 | ||||
지역어 | 과라니어 | ||||
정치체제 | 공화제, 연방제, 대통령중심제 | ||||
대통령 | 마우리시오 마크리 | ||||
부통령 | 가브리엘라 미케티 | ||||
역사 | |||||
독립 | 스페인로부터 독립 | ||||
• 아르헨티나 5월 혁명 | 1810년 5월 25일 | ||||
• 독립 선언 | 1816년 7월 9일 | ||||
• 승인 | 1821년 (포르투갈) | ||||
지리 | |||||
면적 | 2,766,890km2 (8 위) | ||||
내수면 비율 | 1.1% | ||||
시간대 | ART (UTC-3) | ||||
DST | ARST (UTC-3) | ||||
인구 | |||||
2015년 어림 | 43,131,966명 (31위) | ||||
인구 밀도 | 14명/km2 (195위) | ||||
경제 | |||||
GDP(PPP) | 2012년 어림값 | ||||
• 전체 | $7,749억 (22위) | ||||
• 일인당 | $18,205 (51위) | ||||
HDI | 0.811 (45위, 2012년 조사) | ||||
통화 | 페소 (ARS) | ||||
기타 | |||||
ISO 3166-1 | 032, AR, ARG | ||||
도메인 | .ar | ||||
국제 전화 | +54 | ||||
아르헨티나 공화국(-共和國, 스페인어: República Argentina 레푸블리카 아르헨티나[*], 과라니어: Tetã Argentina)[1] 줄여서 아르헨티나(스페인어: Argentina 아르헨티나[*], 문화어: 아르헨띠나)는 남아메리카 대륙 남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23개의 주와 자치시 1개로 구성된 연방 공화국이다.주요 도시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르도바, 바이아블랑카, 마르델플라타 등이 있다.
동쪽의 대서양과 서쪽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2,766,890 km²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넓으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이다. 또한 스페인어 사용국가 중 가장 큰 나라이며, 백인 인구가 국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로, 수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이다.
아르헨티나는 북쪽으로 파라과이와 볼리비아가, 북동쪽으로는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서쪽과 남쪽으로는 칠레가 있다. 아르헨티나는 남극에서 아르헨티나령 남극이라는 969,464 평방 킬로미터의 지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일부는 칠레(칠레령 남극)와 영국(영국령 남극)의 영유권 주장 지역과 겹친다. 그러나 이 주장은 1961년 체결된 남극 조약에 의해 공식적으로 유예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또한 영국의 해외 영토로 인정되고 있는 포클랜드 제도와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구매력 대비 1인당 GDP가 3위이며, 인간개발지수는 두 번째로 높았다. 아르헨티나의 명목 GDP는 세계 30위이나 구매력을 고려하면 총 GDP는 세계에서 23위이다. 세계은행에서 이 나라를 국민총소득 중상 수준의 국가 혹은 신흥 시장으로 분류했다. 아르헨티나는 메르코수르, 남미 국가 연합, 세계은행 그룹, G-15, G-20에 속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목차
1 지리
1.1 지형
1.2 기후
1.3 생태계
2 역사
2.1 콜럼버스 이전 시대
2.2 식민 시대
2.3 독립
2.4 현대 아르헨티나의 등장 과정
2.5 페론에서 군사독재까지
2.5.1 페론정부
2.5.2 일리아
2.5.3 페론의 재집권
2.5.3.1 군사정권
2.6 민주화 이후
2.6.1 알폰신
2.6.2 메넴
2.6.3 루아
2.6.4 두알데
2.6.5 키르츠네르
3 인구 현황
3.1 현재 수치
3.2 인종
3.3 이민
3.3.1 유럽계와 원주민
3.3.2 유럽이민의 출신지
3.4 소수 민족
3.5 불법 이민
3.6 종교
3.7 도시화
4 행정 구역
5 정치
6 경제
6.1 공업
6.2 목축업과 농업
6.3 광업
7 사회
8 교통
9 문화
10 스포츠
11 예술
11.1 문학
12 관광
13 외교
14 참고
15 외부 링크
지리
지형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부에 위치하며, 브라질에 버금가는 넓은 국토를 가진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미국, 브라질, 캐나다, 중화인민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다음 8위의 넓은 면적을 가진 나라이다. 북쪽은 볼리비아, 동북쪽은 우루과이·브라질·파라과이, 서쪽은 칠레에 접하고, 동남쪽은 대서양에 잇닿아 있다. 남쪽의 최장 거리는 3,700km, 동서의 최대 거리는 1,700km라는 넓은 국토의 서부를 안데스 산맥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조인빌 섬을 포함하여 남극의 일부도 아르헨티나의 영토이다. 아르헨티나는 고원 지대와 사막을 포함하여 열대 우림에서부터 한랭 지대까지 전지구상에 있는 모든 기후 지역을 갖고 있다. 남미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콩카과 산 역시 아르헨티나에 있다.
팜파스 (Pampas)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쪽과 남쪽에 펼쳐진 중앙의 대평원이다. 습한 팜파라고도 하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주와 코르도바 주의 대부분과 산타페주, 라팜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라팜파 주의 서쪽 부분과 산루이스주도 대체로 평야(건조한 팜파)인데, 건조해서 주로 초지로 쓰인다. 이름이 같은 코르도바 주 지역의 시에라데코르도바 산맥은 팜파스에서 가장 지리적으로 두드러지는 지형이다.
이 지역과 우루과이 사이에는 길이 약 4,700km의 라플라타 강이 흐른다. '은(銀)의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귀의 강폭은 약 220km 가량이다.
팜파스는 농업에 적절한 비옥한 땅으로 쇠고기·양모·밀·옥수수 등을 많이 산출하며, 이 나라의 중요 경제 지역이다. 제조 공업도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란차코 (Gran Chaco)
북부의 아열대 평원 그란차코 지역은 계절에 따라 건조하거나 습해진다. 주로 목화를 재배하고 가축을 방목한다. 이 지역에는 차코주, 포르모사주가 있다. 간간히 아열대 우림, 관목림, 습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수많은 식물과 동물의 서식지이다. 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는 그란차코에서도 건조한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
메소포타미아는 파라나 강과 우루과이 강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이 지역에는 코리엔테스주와 엔트레리오스주가 있다. 목축과 식물 재배에 적합한 평야 지역으로, 코리엔테스 중부에는 이베라 습지가 있다. 미시오네스 주는 더 더운 지역으로, 브라질 고원의 지형적 영향을 받는다. 아열대 우림과 이과수 폭포가 있다.
파타고니아 (Patagonia)
아르헨티나 남부의 네그로 강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파타고니아의 스텝 초원에는 네우켄주, 리오네그로 주, 추부트주, 산타크루스 주가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은 북쪽으로는 반건조 기후에 추우며, 남쪽으로는 건조하다. 그러나 서쪽 경계에는 숲이 자라며 여러 호수가 있다. 그리고 대륙의 돌출부 끝에는 칠레와 절반씩 영유하는 티에라델푸에고 제도가 있으며, 바다의 영향으로 서늘하고 습하며, 온화하다. 파타고니아 북부(네그로 강 남쪽, 네우켄)은 코마우에 지역이라고도 한다.
파타고니아는 목양지로서 유명하며, 석유 자원 지대로서도 중요하다.
쿠요 (Cuyo)
아르헨티나 중서부는 안데스 산맥의 영향권이다. 산맥 동쪽의 건조한 지역을 쿠요라고 한다. 고산 지대에서 녹은 물은 저지대에 있는 오아시스에 물을 공급한다. 이 지역은 멘도사주와 산후안 주의 과실과 포도주 생산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라리오하 주의 더 덥고 건조한 기후를 만난다. 산루이스 주 북쪽의 시에라팜페아나스 산맥이라는 세 곳의 낮은 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 이곳 최동단 경계를 이룬다.
칠레 국경 지역에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콩카과 산이 있다. 안데스 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일 뿐 아니라 남반구와 서반구에서도 최고봉이다. 높이는 약 7,000m이다.
아르헨티나 북서부 (NOA)
이 지역은 아르헨티나에서 평균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산맥이 뻗어 있으며, 어떤 봉우리는 6,000m에 이르기도 한다. 이 산지는 북쪽으로 갈수록 더 넓어진다. 산맥은 비옥한 강가 계곡에서 끊기는데, 가장 중요한 곳은 카타마르카주, 투쿠만주, 살타주의 칼차키 계곡이다. 더 북쪽으로 볼리비아와 가까운 후후이주는 주로 중부 안데스의 고원에 있다. 남회귀선이 이 곳 북부를 지난다.
기후
기후는 국토가 남북으로 뻗고 넓기 때문에 지역차가 크지만, 대체로 온화하다. 북부와 동북부는 아열대성으로, 우계(10∼3월)와 건계(4∼9월)로 나뉘며, 여름이 길고 덥고, 겨울철은 짧고 온화하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부는 온대 기후에 속하며, 강수량은 여름철에 많으나 대체로 연중 고른 편이다. 그리고 중앙부의 여름은 더우며 뇌우를 동반한다(때때로 세계에서 가장 큰 우박이 내리기도 한다.). 남부의 겨울, 즉 4∼9월은 혹독하다.
남아메리카에서 기록된 가장 높은 온도와 가장 낮은 온도가 아르헨티나에서 기록되었다. 1920년 1월 2일, 코르도바 주에서 49.1 °C가 기록되었다. 가장 낮은 온도로는 1972년 7월 17일, 산후안 주에서 기록된 −39 °C이다.
남반구에 있으므로 4계(四季)의 시기는 북반부와 정반대여서 1년의 시작인 1월 1일은 여름이 된다.
생태계
북쪽의 그란차코 지역은 Dalbergia속의 브라질리안 로즈우드나 퀘브라쵸, 카로브 나무 등의 아열대식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안데스 근처의 더 메마른 곳에는 사바나와 비슷한 지역이 존재한다. 수생식물들은 아르헨티나의 습지에 잘 자란다. 아르헨티나의 중부에 있는 습윤팜파스는 톨그래스 초원이다. 원래의 팜파스에는 사실상 나무가 없으나 양버즘나무와 유칼립투스 등과 같은 수입종들이 길이나 마을, 시골의 사유지(에스탄시아) 등에 자란다. 유일한 팜파스 원산지의 나무는 피토라카이다. 팜파스 토양의 표면은 진한 검은색으로 주로 흔히 부엽토로 알려진 몰리솔로 되어있다. 이것은 이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농업지로 만들었지만 또한 상업적 농업으로 인해 이 지역의 본래 생태계를 심하게 훼손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쪽의 팜파스는 건조팜파스로서 짧은 풀이 자라는 평원이거나 스텝지역이다. 29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대부분의 파타고니아는 안데스 산맥에 의한 비그늘이 형성되어 건조한 지역에 맞는 식물군들이 존재한다. 이 지역의 토양은 딱딱하고 바위가 많아 강이나 계곡 근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불가능하다. 파타고니아의 서쪽과 티에라델푸에고 섬에는 침엽수림과 활엽수림 등이 있다.
쿠요에는 가시가 있는 식물이나 다른 건조지역에 사는 식물들이 풍부하다. 강을 따라서는 몇몇 종의 나무와 풀들이 자란다. 이 지역의 조건은 포도가 자라기 적합한 조건이다. 아르헨티나의 북서쪽은 다양한 종의 선인장이 존재한다. 약 4000m의 고도의 지역에는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북쪽의 아열대 지역에는 많은 종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재규어, 퓨마, 오셀롯 등의 고양이과 동물들, 고함원숭이와 같은 영장류, 악어와 같은 거대한 파충류 등이 서식한다. 맥, 페커리, 카피바라, 들개 등과 다양한 종의 거북 등도 서식하고 있다. 다양한 종의 조류 역시 서식하고 있는데, 특히 벌새, 홍학, 큰부리새, 제비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 중부의 초원에는 큰개미핥기, 아르마딜로, 팜파스 고양이, 갈기늑대, 마라, 기니피그 등의 포유류와 레아가 서식한다. 매와 왜가리과의 새, 그리고 티나무 역시 이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 팜파스 사슴, 팜파스 여우 등도 서식한다. 이들 중 몇몇 종들은 파타고니아에도 서식하고 있다.
서쪽의 산지에는 다른 동물들이 산다. 라마나 구아나코, 비쿠냐 등의 남미의 특징적인 종들이 서식한다. 또한 여우나 비스카차, 안데스 고양이, 그리고 아메리카의 날 수 있는 새중에서 가장 큰 안데스콘도르 등 역시 서식한다.
아르헨티나 남부는 퓨마, 안데스 사슴, 푸두(세계에서 가장 작은 사슴), 그리고 도입종인 멧돼지 등의 서식지이다. 파타고니아의 해안가에는 코끼리물범, 물개, 바다사자, 그리고 다양한 종의 펭귄 등이 서식한다. 조금 더 남쪽은 가마우지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영해에는 돌고래, 범고래, 그리고 남방참고래와 같은 고래 등 다양한 바다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정어리, 만새기, 연어, 그리고 상어 등의 바다물고기이 서식하고 또한 티에라델푸에고 섬에는 오징어와 같은 것도 서식한다. 아르헨티나의 강과 개울에는 다양한 종의 송어 역시 서식한다. 보아나 매우 독성이 강한 살모사 등도 서식한다. 1928년 조사 이후 호르네로가 아르헨티나의 국조로 선정되었다.
역사
콜럼버스 이전 시대
아르헨티나에 최초로 인간이 정주한 증거는 파타고니아에서 발견되며 기원전 11,000여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는 국가 없이 인디오들이 부족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파차쿠텍 왕이 통치하던 잉카 제국은 1480년에 공격을 시작하여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북서부를 정복해서 코야수유 지역에 포함시켰다. 과라니족들은 유카, 고구마, 예르바 마테 농업을 발전시켰다. 중부와 남부 지역(팜파스와 파타고니아)은 유목민들이 지배했으며 17세기에 마푸체인들이 통일시켰다.
식민 시대
1516년 이 땅에 유럽인들이 들어왔다. 스페인은 1542년, 남아메리카 대부분을 아우르는 페루 부왕령을 설립했다. 그들이 현재 아르헨티나 지역에 처음 정착한 것은 1527년 파라나 강 근처의 지역이었다. 그들은 15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음 영구 식민지를 건설했으나, 원주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스페인은 15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영구 식민지를 다시 건설하였다.
이 지역은 주로 스페인 이민자들과 크리오요라는 그들의 후손과 메스티소, 토착민과 아프리카 노예의 후예들의 나라였다. 식민 시대 정착민 중 1/3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다른 도시에 모여 살았으며, 나머지는 가우초라 하여 팜파스에서 살았다. 나머지 지방에는 원주민들이 살았고, 파타고니아와 그란차코의 대부분 지역은 원주민 지배하에 남았다.
1776년, 전의 페루 부왕령의 영토였던 지역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수도로 하여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이 설치되었다. (이 영향으로 스페인어가 아르헨티나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고 기독교(로마 가톨릭교회)가 주요한 종교이다.) 영국이 1806~1807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두 번 침공했으나 후에 대중적 지지를 얻어 총독이 되는 프랑스 장교 산티아고 리니에르에 의해 두번 다 저지당했다.
독립
1810년 5월 25일 페르디난도 7세가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쫓겨났단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민들은 1차 의회(First Government Junta, 5월 혁명)을 조직했다. 현재의 아르헨티나를 이루게 되는 두 나라가 생겼는데, 남아메리카 합주국(1810년)과 자유 연맹(1815년)이었다. 다른 주들은 자치론자와 중앙집권론자들의 견해 차로 통합 국가에 귀속되는데 시간이 걸렸다. 파라과이는 1811년 독립을 선언하며 분리했다.
호세 데 산 마르틴이 1814년에서 1817년 사이에 군사 작전을 지휘하면서 점차 독립은 현실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산 마르틴을 국가 독립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산 마르틴과 그의 군대는 1817년 안데스를 넘어 칠레와 페루의 왕당파를 무찔러 독립을 공고하게 다졌다. 1816년 7월 9일 투쿠만 의회가 소집되어 스페인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1820년 자유 연맹(Liga Federal)은 남아메리카 통합주 군대와 브라질에서 온 포르투갈 군대의 공격으로 무너졌으며, 이 주는 남아메리카 통합주로 귀속되었다. 1825년 볼리비아가 독립을 선언했고, 1826년에 아르헨티나는 브라질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시스플라티나 주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결과 당시 브라질의 속주였던 시스플라티나 주의 독립을 막으려는 브라질과 무력으로 충돌하여 전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었다. 1828년에는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 정전을 맺고 그 결과 시스플라티나 주가 우루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이 정전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총독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가 부상했는데, 연방주의자인 그는 공포 정치를 펴고 불안한 연맹을 계속 유지했다.
1852년 로사스 총독이 축출되자 중앙집권당(Unitarios)과 연방주의자(Federales)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미래의 내분을 미리 막게 된다. 1853년 헌법이 통과된다. 이것은 법학자 후안 바우티스타 알베르디가 초안을 썼으며, 프란체스코회 수사 마메르토 에르키우가 설교를 통해 헌법과 국가 통합을 변호했으며, 처음 몇 년간 어려운 시기를 맞았으나, 1865년 전쟁으로 국가 통합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신 그 전쟁으로 파라과이를 멸망 위기까지 몰고 갔다.
현대 아르헨티나의 등장 과정
1870년대부터 해외 투자와 이민자들이 밀려 들어오며 농업 등이 근대적으로 발전했고 아르헨티나 사회와 경제 새롭게 재편되어 국가 통합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1870년대 "사막의 정복" 남부 팜파스와 파타고니아의 토착 부족들을 탄압하여 1,300여명의 토착민이 죽었다.
1880년과 1929년 사이 아르헨티나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여 당시 세계적으로 부유한 10개국 중 한 곳이었으며 농업 수출 경제로 이익을 보았다. 이민자들이 늘고 사망률이 떨어지면서 아르헨티나 인구는 5배로 늘었고, 경제는 15배로 확대되었다.
국민자치당은 비민주적으로 아르헨티나 정치를 지배했으나 1912년 로케 사엔스 페냐 대통령이 남성 보통 선거와 비밀 선거를 법제화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전통적인 정적인 중앙집권론자 급진 시민 연맹이 1916년 아르헨티나 첫 자유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폴리토 이리고옌 대통령은 사회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가족농과 소상인 지원을 확대했다. 그러나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1930년 군부는 그를 축출했다. 그리하여 십 여년간 보수주의자의 지배가 시작되었으며 경제 정책을 보호주의로 선회했다. 아르헨티나는 제1차 세계대전때 중립을 지켰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대체로 그런 태도를 보였으며, 연합국의 식량 공급처가 되었다.
페론에서 군사독재까지
페론정부
1946년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사회 및 교육 정책을 폈으며,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의 수가 늘어나서 노동자 계급이 성장하였다. 그의 아내 에바 페론("에비타"로 잘 알려졌다.)은 페론의 두 번째 임기까지 영부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페론의 성공으로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거물이었다. 1947년 그녀는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복지를 실시했다.
이것은 아르헨티나 최초로 정부가 사회복지에 관심을 두게 된 사건이었으며, 기존의 과두정치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에비타는 무뚝뚝한 페론과 그의 지지자 사이의 "사랑의 다리"로 여겨졌다. 그녀는 여성 참정권을 얻어냈으며, 페론주의 여성당을 창립하기도 했다. 페론의 두 번째 임기까지 그의 경제학자들은 산업과 도시 발전을 장려했다. 1952년 에비타가 33살의 나이로 죽자 페론 행정부는 점차 아르헨티나의 주요한 종교인 로마 가톨릭교회와 자신의 정치운동 사이의 갈등으로 곤란에 처했다. 1955년 쿠데타가 일어나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일리아
1963년 아르투로 일리아가 대통령에 선출되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경제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그가 페론주의자들을 정계에 끌어들이려 하자 군부는 1966년 쿠데타로 대통령을 축출했다.
페론의 재집권
억압적인 군부독재정권은 국내 개발과 공공 사업에 대한 투자를 장려했다. 1975년에 경제는 매우 발전했고 빈곤은 7%나 떨어져 낮은 수준이었다. 부분적으로 군부 독재정권의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써 정치적 소요가 확대되자 망명지에서 페론은 능란하게 학생과 지식인으로 구성된 시위대를 동원해서 결국 군사 정권은 1973년 자유 선거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페론은 스페인에서 다시 돌아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페론은 1974년 7월에 죽고, 그의 셋째 부인이자 부통령 이사벨 페론은 남편의 뒤를 승계했다. 이사벨 페론은 페론주의자 파벌 사이의 타협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좌우익 극단주의자 사이의 폭력 사태와 재정위기가 일어나자 1976년 3월 24일 군사 쿠데타로 이사벨도 축출됐다.
군사정권
군사정권은 스스로를 국가 재건 과정이라고 불렀는데, 군사정권은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파를 탄압(일명 더러운 전쟁)했다. 군부독재정권 당시 아르헨티나 비밀정보국은 칠레 비밀경찰 및 미국 중앙정보국과 협조하여 콘도르 작전을 수행해 수천명의 반체제 "행방불명자"가 생겼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일명 국가 재건 과정)은 여러 복잡한 경제 문제를 남기고 물러났다. 1976년 군사정권이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성급하게 자본 및 수입자유화를 실시하여 외채가 1975년 78억달러에서 외채가 1983년에는 450억달러로 늘어났다. 외채 상환을 위해 다시 외채를 끌어들이는 악순환은 이때부터 시작됐다.[2] 군사정권은 노동법 개정, 노조탄압, 최저임금 폐지를 통해 해고를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하고 임금을 대폭 하락시켰다. 1970년을 기준으로 실질 임금을 100이라고 하면, 1975년에는 124로 상승했지만, 1976년에는 1년만에 30년 이래 최저 수준인 79까지 떨어졌다. 이로 인해 국민의 생활 수준이 하락하여 군사정권 말기에 빈곤율이 40%, 실질실업률은 18%까지 치솟았다.[3][4]
국민들은 군사정권에 저항했고 1982년 군사 정부가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을 벌이다 패하자 신뢰를 잃고 1983년 민정 이양이 이뤄지고 선거를 치르게 된다.
민주화 이후
알폰신
라울 알폰신 정부는 "행방불명자"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으며, 군대에 대한 민간의 통제 및 민주적인 통합 조직을 세웠다. 군사독재정권 출신자들은 고발되어 종신형을 선고받는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과거 정권이 떠안은 외채는 그대로 남아 국제통화기금과 개인 채권자들은 아르헨티나 경제에 몇몇 조건을 내렸으며, 국가는 우선 공공 사업과 국내 신용을 희생하고 외채를 갚아야 했다. 알폰신은 경제 악화를 해결하지 못하여 대중의 지지를 잃었다. 뒤이어 갑자기 닥친 1989년 통화 위기로 물가는 15배나 껑충 뛰었으며, 그는 5개월 일찍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메넴
새로 대통령에 선출된 카를로스 메넴은 사유화 정책을 펴기 시작했으며, 1990년에 두 번째 하이퍼인플레이션 이후 경제학자 도밍고 카바요를 기용하여 1991년 페소화 환율을 달러화에 고정시켰으며, 시장 기반의 정책을 추진해 사유화 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무역 장벽과 기업 규제를 철폐했다. 이런 개혁 덕분에 1990년대 거의 내내 물가 안정을 이루면서 투자와 성장 확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페소화는 시장에 달러화가 밀려들어와 제 가치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외채가 다시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1998년 일련의 국제 금융 위기가 닥치고 고정 페소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면서 점차 경제 위기로 빠져들었다. 경제 안정에 대한 기대는 갑자기 무너졌으며, 그의 임기말인 1999년 누적된 문제들과 부패 보고로 메넴은 인기를 잃었다.
루아
후임 대통령 페르난도 데 라 루아는 카를로스 메넴정권의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악화된 수출 경쟁력을 물려받았다. 정치 연합은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고, 카바요가 다시 경제 장관으로 돌아오자 이는 금융 파생상품 시장에 의한 위기로 해석되었다. 이에 맞불로 카바요는 결국 자본 이탈 흐름을 막고 긴급한 채무 위기를 막을 수밖에(은행 계좌를 동결하며 정점을 이루었다) 없었다. 그러나 대중의 불만은 계속되었고 2001년 12월 20일 아르헨티나는 1890년 대불황 이래 최악의 사회 및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거리에선 폭력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과 충돌하여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위 군중 사이로 점차 "모두 꺼져라"라고 외쳤으며, 결국 데 라 루아 대통령도 사임하게 된다.
두알데
아르헨티나는 2주 동안 세 명의 대통령을 갈아치웠으며, 2002년 1월 2일 입법 의회가 에두아르도 두알데를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하면서 극에 달했다. 아르헨티나는 해외 채무에 대해 채무 불이행(default)를 선언했으며, 11년간 지속된 페소화의 달러화 연동은 폐지되었고, 이로써 페소화가 크게 절하되고 인플레이션을 막았다. 중도 좌파 성향의 페론주의자 두알데는 2002년 말까지 실업률이 25%에 이르고 실질 임금이 지난 60년간 최저치를 보이면서 금융 및 사회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이 위기로 대중은 정치인과 제도를 더욱 불신하게 되었다. 이듬해 시위가 득세했고, 경제는 2002년 말부터 안정되기 시작했으며 그해 12월 은행 인출 제한이 해제되었다.
키르츠네르
2003년 5월 자유사회주의 페론주의자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산타크루스 주지사가 대통령에 선출됐다. 환율의 평가절하 정책 덕택에 정부는 산업 부흥했으며, 수입대체(import substitution)와 수출 증가에 기반을 둔 새 정책을 실행했고, 재정과 무역 면에서 안정적으로 흑자를 보였다. 키르츠네르 시기에 아르헨티나는 대부분의 채권에 높은 할인율(약 66%)로 채무 재조정을 했다. 또한 2005년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모든 외채를 갚았다. 공익 사업을 재조정하고 90년대 민영화된 기업 중 일부를 국유화했다. 그의 경제부 장관인 로베르토 라바냐는 강력한 소득 증진 정책과 공공 사업 투자를 추진했다. 그리하여 아르헨티나는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경제 성장을 계속 하게 되었다. 그리고 추후 아르헨티나는 G20회원국이 되었다.
네스토르 키르츠네르가 200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그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상원의원이 출마하여 당선됐다. 페르난데스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직접 선거로 뽑힌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됐다. 여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총선과 지방선거에 승리해서 의회를 다수를 차지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농업 수출세 인상 계획을 펴려고 하자, 2008년 3월부터 7월까지 농업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직장폐쇄로 반발했다. 2008년 7월 16일 부통령 훌리오 코보스는 의회의 가부 동수(同數) 결과에서 상원의장으로서 여당에 반대표를 던져서 대통령의 정책을 좌절시켰다. 2008년 10월 세계 금융 위기가 닥치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남편의 정책대로 국가가 직접 경제에 개입했다. 2009년 6월 총선에서 집권연합 승리를 위한 전선이 패해 과반수를 잃었다. 2009년 10월 아르헨티나 상하원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개 업체가 소유할 수 있는 방송 면허의 수를 제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미디어 개편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미디어 개편법안에 대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클라린을 겨냥했다는 평가도 있다.[5]
인구 현황
현재 수치
아르헨티나 통계 및 인구조사국(INDEC)의 2001년 인구조사를 보면 아르헨티나의 총 인구는36,260,130명이다. 남아메리카에서는 3위이며, 전 세계로는 30위에 해당한다. 전 세계적으로 8위의 면적을 자랑하는 국토를 보유한 나라 치고는 인구가 너무나 적은 나라이기도 하다. 2008년에는 40,482,000으로 늘었다. 이 나라의 인구밀도는 1평방킬로미터당 15명으로 전 세계 평균 50명보다 낮다. 인구 분포는 편중되어 있으며,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인구 밀도는 1평방킬로미터당 14,000명이 넘는데 비해 산타 크루스 주는 1평방킬로미터당 1명도 채 안된다. 1930년대 이래 적정한 출산율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순 이민율이 양수(+)인 나라로 해마다 +0.4%로 순수 이민자가 들어온다.
지역별 인구[6]
순위 | 도시 | 주 | 인구 | 지방 |
---|---|---|---|---|
1 | 부에노스아이레스 | City + 31 partidos in 부에노스아이레스주 | 12,789,000 | 팜파스 |
2 | 코르도바 | 코르도바 | 1,372,000 | 팜파스 |
3 | 로사리오 | 산타페 | 1,242,000 | 팜파스 |
4 | 멘도사 | 멘도사 | 885,000 | 쿠요 |
5 | 산미겔데투쿠만 | 투쿠만 | 789,000 | NOA (northwest) |
6 | 라플라타 | 부에노스아이레스 | 732,000 | 팜파스 |
7 | 마르델플라타 | 부에노스아이레스 | 604,000 | 팜파스 |
8 | 살타 | 살타 | 516,000 | NOA (northwest) |
9 | 산타페 | 산타페 | 493,000 | 팜파스 |
10 | 산후안 | 산후안 | 453,000 | 쿠요 |
11 | 레시스텐시아 | 차코 | 377,000 | 그란차코 |
12 | 산티아고델에스테로 | 산티아고델에스테로 | 357,000 | 그란차코 |
13 | 코리엔테스 | 코리엔테스 | 345,000 | 메소포타미아 |
14 | 바이아블랑카 | 부에노스아이레스 | 304,000 | 팜파스 |
15 | 산살바도르데후후이 | 후후이 | 298,000 | NOA (northwest) |
16 | 포사다스 | 미시오네스 | 287,000 | 메소포타미아 |
17 | 파라나 | 엔트레리오스 | 268,000 | 메소포타미아 |
18 | 네우켄 | 네우켄 | 255,000 | 파타고니아 |
19 | 포르모사 | 포르모사 | 229,000 | 그란차코 |
20 | 산페르난도델바예데카타마르카 | 카타마르카 | 196,000 | NOA (northwest) |
21 | 산루이스 | 산루이스 | 192,000 | 쿠요 |
22 | 라리오하 | 라리오하 | 172,000 | NOA (northwest) |
23 | 리오콰르토 | 코르도바 | 161,000 | 팜파스 |
24 | 콩코르디아 | 엔트레리오스 | 148,000 | 메소포타미아 |
25 | 코모도로리바다비아 | 추부트 | 141,000 | 파타고니아 |
인종
"이민자 축제"(Fiesta del Inmigrante)에서는 19세기에서 20세기 오베라 시의 아르헨티나 이민을 기념한다. 하지만 이민자 축제 개최와는 무색하게 아르헨티나는 인종 차별이 심한 편이다. 인구 절대 다수가 백인이다 보니 인종에 대한 월등감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방문한 방문객들, 특히 흑인 계통이나 동남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방문하면 인종 차별적인 모욕을 당하기도하며 심지어 마트 등 생필품 가계에서 물건을 계산을 안 해주는 등의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영원한 우방 국가인 우루과이조차도 이러한 인종 차별 때문에 아르헨티나에 핀잔을 줄 정도이며 앙숙 관계인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를 이러한 문제점을 들어 인종 차별밖에 할 줄 모르는 나라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민
아르헨티나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과 더불어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유럽계와 원주민
대부분의 아르헨티나인들은 유럽에서 온 식민시대 정착민과 19~20세기 이주민들의 후손이며, 아르헨티나 인구의 90%는 유럽계 백인이다. 이들 유럽 이민자 대다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이다. 쿠오레(사랑의 학교)에 나오는 마르코 소년이 엄마를 찾아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이야기는 19세기와 20세기에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민이 많았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인구의 6%는 메스티소이다. 또 4%는 아랍인이나 동아시아인 후손이다. 초근 국가 인구조사에 따르면 600,000여명 (1.6%)만이 원주민이다.
유럽이민의 출신지
스페인 식민자들이 처음으로 도착한 이래,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620만 여명의 유럽 이주민 이 나라로 들어왔다. 주요 출신지로는 이탈리아(피에몬테, 롬바르드, 나중에는 캄파니아, 칼라브리아), 스페인(주로 갈리시아와 바스크), 프랑스이다. 그 밖에도 아일랜드,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동유럽이나 폴란드, 헝가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등 중부 유럽에서도 이민자가 왔다. 마케도니아나 몬테네그로 등 발칸 국가에서도 상당수가 왔다. 아르메니아인도 있으며, 추부트 계곡에는 웨일스인들이 큰 집단을 이루고 있다. 러시아인, 폴란드인, 프랑스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에스파냐인 등은 인종적으로도 서로 섞이고 이들 중에 혼혈이 존재하기도 하는 편이다.
소수 민족
아직 적지만 동아시아에서 온 이주자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살고 있다. 최초의 아시아계 아르헨티나인은 일본인의 후손으로 이후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등이 뒤 따라서 현재 60,000명이 넘었다. 특히 한국계의 경우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이민장려정책에 따라 대거 유입되어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에서 한국계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집단은 대개 아슈케나짐 유대인으로 15~20%는 세파라딤으로 주로 시리아 유대인이다.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집단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파타고니아에는 1902년 끝난 보어 전쟁 이후 이곳으로 이주안 남아프리카 보어인의 집단이 있다. 이들은 100~120명으로 추산되며, 훌리오 로카 장군이 그들에게 할당한 땅에 아직도 살고 있다. 그들은 주로 농촌에 살고 있다.
아랍 출신의 집단도 많은데, 레바논이나 시리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동방 정교나 마론파 신도로 유대인이나 무슬림도 있다. 상당수는 재계나 정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령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은 라리오하 주의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다.
수적으로 적긴 하지만 영국 이주민들도 현대 아르헨티나가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국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전통적으로 철도, 공업, 농업 분야에서 영향력있는 위치에 올랐다. 1940년대 후안 페론이 수많은 영국인 소유 회사를 국유화하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말비나스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계 아르헨티나인들이 이렇게 성공한 연유는 복잡하다.
2004~05년 "원주민 보충 조사"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아르헨티나 원주민 인구는 600,000여명으로, 대다수는 마푸체인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인구조사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이 자료는 역사적으로 인종보다는 국적 기원의 범주로 조사를 해와서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이나 메스티소를 빠뜨렸다는 것이다. 1887년 국가 인구조사에서 처음으로 흑인을 독립 범주로 설정했는데, 이전에는 정부에서 무시한 것이었다.
불법 이민
불법 이민은 아르헨티나 인구 현황에서 최근에 생긴 요소이다. 대부분의 불법 이민은 아르헨티나 국경 북쪽의 볼리비아나 파라과이에서 오는 경우이다. 페루나 에콰도르, 우루과이에서도 불법 이민자가 들어온다. 심지어는 징병제에 크게 불만을 갖고 있는 브라질 사람들이 불법 이민자로 들어오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실제로 징병제를 증오한 나머지 아르헨티나로 국적을 변경한 브라질인도 상당수 존재한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는 750,000여명이 공적인 등록 기록이 없는 것으로 추산했고, 그리하여 "위대한 조국"(Patria Grande) 계획을 시행하여 불법 이주민을 공적 신분을 부여하여 670,000여명의 신청자가 이 사업으로 양성화되었다.[출처 필요]
아르헨티나에서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관대하며 아르헨티나로 여행온 사람들이 아예 그 곳에 터를 잡고 죽을 때까지 사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국의 경우 상호비자면제 협정이 이루어져 있으며 비자없이 최장 90일까지 아르헨티나에 체류할 수 있으나 90일이 지나도 관광비자를 갱신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 한화로 약 2만원에 해당되는데 이 마저도 실질적으로는 흐지부지 상태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이나 일본 등 상호 비자면제협정을 맺은 국가와 남미 대륙의 타국가 국적을 갖고 있을 경우 불법체류자로서 2년이 경과하면 아르헨티나 국적이 자동으로 취득된다.[출처 필요]
종교
아르헨티나 국민 대다수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 그 중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가 9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수의 개신교도 있다. 그 밖에 유대교나 이슬람교 등도 있으나 이 역시 소수이다.
아르헨티나는 국민에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나, 대통령과 부통령은 반드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만 선출하도록 헌법으로 정해져 있다.
2013년 3월 14일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가톨릭 대교구의 교구장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대주교가 아메리카 최초의 교황인 프란치스코로 선출되었다.
도시화
아르헨티나는 대단히 도시화된 나라이며, 국내 10개 대도시 지역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으며,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인구의 1/10 이하이다. 약 3백만명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자치시에 살고 있으며, 그란 부에노스아이레스 광역권의 인구는 총 1,280만명이다.(2008년) 그리하여 이 지역은 세계에서 인구가 많은 대도시권 중에 한 곳이다.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와 로사리오 광역시도 인구가 각각 130만, 120만에 이르며, 나머지 다섯 광역 도시들도 각기 50만 정도 인구가 살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이주민들은 도시에 정착해서 직장을 얻고 교육 등 더 많은 기회를 얻어 중산층에 편입될 수 있었다. 또 철도망이 확대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방 소도시에도 정착했으며, 1930년대부터 시골 노동자들이 대도시로 이주했다.
1990년대 철도가 끊기고 지역 소규모 제조업이 대규모 저가 수입품에 밀려 몰락하면서 많은 시골 소읍들이 유령도시가 되었다. 동시에 아르헨티나의 대도시 외곽에는 슬럼(villas miserias)이 확산되어 슬럼 인구가 750,000 가구(약 4백만 명)에 육박했다. 슬럼에는 도시 하류층 빈민, 내륙(특히 북부)에서 올라온 시골 사람들, 1960~90년대 사이 이웃나라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2001~2년에 경제 위기로 상당수 이민자들이 떠나기도 했지만, 경제가 회복되자 다시 돌아온 사람도 많았다.
여러 도시 지역들은 유럽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유럽 도시처럼 보인다. 대개 도시는 스페인식으로 플라사plaza라 하는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성당과 정부 건물이 둘러싼 격자 모양의 도시 구조이다. 이런 도시의 일반적인 배치를 "체커판"(damero)이라고 하는데, 사각형 블록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현대에는 이런 방식을 벗어나기도 한다. 19세기 말에 건설된 라 플라타 시는 체커판 모양에 일정한 간격으로 대각선 도로가 나있다. (이 도시는 남아메리카 최초로 전기 가로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행정 구역
아르헨티나의 행정 구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주 | 주도 | 주 | 주도 | ||
---|---|---|---|---|---|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 | 멘도사 | 멘도사 | |||
부에노스아이레스주 | 라플라타 | 미시오네스 | 포사다스 | ||
카타마르카주 | 산페르난도델바예데카타마르카 | 네우켄 | 네우켄 | ||
차코 | 레시스텐시아 | 리오네그로 | 비에드마 | ||
추부트 | 라우손 | 살타 | 살타 | ||
코르도바 | 코르도바 | 산루이스 | 산루이스 | ||
코리엔테스 | 코리엔테스 | 산후안 | 산후안 | ||
엔트레리오스 | 파라나 | 산타크루스 | 리오가예고스 | ||
포르모사 | 포르모사 | 산타페주 | 산타페 | ||
후후이 | 산살바도르데후후이 | 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 | 산티아고델에스테로 | ||
라팜파 | 산타로사 | 티에라델푸에고 | 우수아이아 | ||
라리오하 | 라리오하 | 투쿠만 | 산미겔데투쿠만 |
정치
정치는 공화제를 채용하고 삼권분립이며, 국민 투표에 의한 4년 임기의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다. 정·부 대통령의 자격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로마 가톨릭교회 신도로 제한된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상·하 양원제로서, 1912년부터 보통 선거제가 실시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총선은 후보 개인이 아닌 정당 또는 정당연합에 투표하는 비례대표 선출제 형식으로 실시된다.[7] 전국은 23개의 주와 1연방구로 이루어지는데, 각 주는 주의회를 가지며, 주지사를 선거한다.
총 병력은 약 6만 7,300명이며,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근대화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 포클랜드 전쟁 이후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택하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자국민으로 하여금 국적포기를 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출신인 네덜란드의 왕비 막시마 조레귀에타는 국왕 빌럼알렉산더르와 결혼한 뒤 네덜란드의 국적을 취득하여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국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배우 마르코의 대한민국 귀화 시도는 계속 실패로 돌아갔다.
경제
아르헨티나의 산업의 근간(根幹)은 농업과 목축업이며, 국가의 경제는 이들 제1차 산업 위에 성립되어 있다. 농산물과 축산물이 GNP의 14%, 총수출의 5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아르헨티나 경제가 갖고 있던 저성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도입되었으나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아르헨티나 산업생산의 위축과 외채의 증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1986년 ~ 2001년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연간 1.5%의 누적성장률을 기록하였으며 외채의 경우 92억 7800만 달러에서 1397억 83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 시기 아르헨티나에서 해외로 유출된 자본의 액수는 약 13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낮은 성장률과 산업구조의 붕괴, 외채 및 자본도피의 증가는 고용률의 감소로 이어졌다. 또한 실질임금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평균 25%가 감소하였다. 특히 1998년부터 2002년 중반까지 아르헨티나 경제는 가장 강력한 경기침체를 경험했고 실업률은 18.3%,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60%에 달했다.[8]
공업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급속히 공업화를 추진하여 공업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는 반면 공업의 생산 경비가 높아 경쟁력은 낮은 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비스업도 시장점유율이 높으며, 그 밖에 운수, 상 등을 포함하면 아르헨티나는 제3차 산업이 발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1900년대에 들어 농산물 가공에서 출현한 아르헨티나의 공업은 제1차 페론 정권시기인 1940년대부터 막강한 정부의 보호 아래 급속히 발전을 이뤘다. 역대 정부가 공업화 정책을 계속 추진한 결과 현재는 대부분의 소비재, 내구소비재와 함께 중공업 부문에서 철강, 선박, 항공기, 자동차를 국내에서 제조하고 있다.
목축업과 농업
목축업은 극히 왕성하여, 국토의 40% 이상이 목장과 방목지(放牧地), 10%가 사료 작물과 목초의 농지로 되어 있다. 소·돼지·양고기·원피(原皮)·양모 등이 산출되며, 육류(肉類)가 풍부하므로 국민 1인당 식육 소비량이 세계 제1위이다. 주요 농산물은 밀·옥수수·아마(亞麻)·면화·목초류·고구마 등인데, 이곳의 곡물은 북반구의 단경기(端境期)에 출하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주요 수출품목은 콩·육류·밀 등으로 미국·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러시아·브라질·일본·독일이 주요 수출 대상국이다. 이에 대하여 기계류·철강·화학약품·원유 등을 수입하는데, 미국·일본·이탈리아·독일·브라질 등이 주요 수입 대상국이다.
광업
광업은 총생산의 4%에 불과하며, 파타고니아 지방의 석유 자원이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매장량은 풍부하나 개발이 뒤져 있다. 근대공업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어났는데, 축산물의 가공업, 삼유·피혁 공업이 중심이다. 제철업은 소미자 제철소가 산니콜라스에 선강(銑鋼) 일관 공장을 건설한 후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회
아르헨티나는 탱고와 목축으로 유명하며 교육과 문화 수준은 남아메리카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따라서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의 문화 수준과 대학을 비롯한 교육 시설은 상당히 충실하다. 다만 문화는 이 지역의 원주민 인디오가 볼 만한 문화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두 이식된 유럽 문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상류 계층에서는 프랑스 풍이 유행했다. 반면 중·하류계 층에서는 국민의 최대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계 이민과 그 자손을 통해 전파된 이탈리아 문화가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렸다. 또한 식민지시대 이후 스페인 문화의 토대 위에 생활양식, 관습, 특히 식생활, 언어,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과의 정치, 경제관계가 긴밀해짐에 따라 미국 문명도 침투되고 있으나 큰 영향은 받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중남미에서 가장 교육이 진보한 나라이며 문맹률은 3%에 불과하다. 교육제도는 7년제의 초등 교육, 5년제의 중등 교육과 4∼6년제의 대학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등 교육은 의무 교육으로 7년간 무료이며 중등 교육(5년), 대학 교육(5∼6년)도 무료이다. 대학의 경우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렵다.
교통
아르헨티나의 교통 인프라는 비교적 우수한 편이다. 넓은 국토를 가진 아르헨티나는 교통도 필연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23만 km의 도로 중 72,000km는 포장 도로이며, 1,575km는 고속도로이다. 철도는 연장거리 4만 5,000km 에 달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핵(中核)으로 하여 남아메리카에서는 가장 잘 정비되어 있으며 세계에서도 유수한 철도망으로 손꼽힌다. 항공 또한 발달하여,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9]
문화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 중의 하나인 떼아뜨로 꼴론(Teatro Colon)을 비롯, 오페라, 발레, 연극, 영화, 클래식 음악, 미술 전시 등 200여 개가 넘는 중남미 최대의 문화 공연 시설을 가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민속춤은 '까르나발리또(carnavalito)' '삼바(zamba)' '가또(gato)' 등이 있는데 특히 '탱고(tango)'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스포츠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다. 아르헨티나는 FIFA 월드컵이 처음 생길때부터 이미 세계적인 축구강국이였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첫 FIFA 월드컵인 1930년 월드컵에서는 이미 당대 최강인 우루과이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의 강호였다. 하지만 극심한 선수유출 속에서 193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계속적인 쇠락의 길을 걸어왔으나 FIFA에서 두 개 이상의 국가대표팀에서 뛸 수 없도록 규정을 변경한 이후가 되어서야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제 기량을 다 발휘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로부터 선수를 빼돌려서 자국 팀으로 주로 사용한 나라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이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로부터 루이스 몬티, 엔리케 과이타, 라이문도 오르시등의 스타플레이어급 선수들을 뭉텅이로 빼가서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가 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1978년과 1986년 월드컵에서 우승하였고, 1978년엔 자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FIFA 월드컵 결승전에 5번 진출했는데 FIFA 월드컵 결승전에 5번 이상 진출한 팀으로는 브라질(7전 5승 2패), 독일(8전 4승 4패), 이탈리아(6전 4승 2패), 아르헨티나(5전 2승 3패) 등 4개국밖에 없다. 하계올림픽에서 역시 발군의 성적을 보여줬는데 특히 2004년 하계 올림픽과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연속으로 우승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거기에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축구 선수의 인적자원 수준이 세계최고이며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등 인류 역사상 더 이상 찾기 힘들 불세출의 축구영웅들을 많이 배출했다. 참고로 이 정도 반열에 올라 있는 축구선수 중에 아르헨티나인이 아닌 선수는 펠레 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밖에 없다. 또한 프로축구 리그인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은 세계 5대 축구 리그중 하나에 꼽히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FIFA월드컵 개최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30년 FIFA 월드컵을 초대 월드컵 개최국인 우루과이와 같이 공동개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술
문학
이 나라의 본격적인 문학은 독립 후의 혼란기에 낭만주의가 대두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탄압 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묘사한 소설 <아말리아>로 유명한 호세 마르몰(1817-1871), 문화사의 고전 <파쿤도, 문명이냐 야만이냐>의 저자인 도밍고 파스티노 사르미엔토(1811-1888)도 있으나, 이 시기의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누가 무어라 해도 가우초(gaucho)의 시(詩)로 초원에 사는 소치기(飼牛)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에스타니슬라오 캄포(1834-1880)는 소박한 소치기의 상징<파우스토>를, 호세 에르난데스(1834-1886)는 국민적 서사시 <마르틴 피에르>를 남겼다. 현대시는 근대파의 레오폴도 루고네스(1874-1938)에서 비롯되는데 보다 대담한 전위시, 특히 초현실주의로 이행되어갔다. 산문으로는 가우초에 대한 향수(鄕愁)를 선명한 이미지로 묘사한 소설 <돈 세군도 솜브라>의 저자 리카르도 구이랄데스(1886-1927), 자연주의적 소설로 이름이 난 마누엘갈베스(1882-1962), 현대 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고립을 테마로 하는 에세이스트 에두아르도 마예아(1903-1982), 환상적 단편소설의 명수(名手)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1976년 발표한 <거미여인의 키스>가 대표작인 마누엘 푸익(1932-1990), 역사소설 <돈 마리오의 영광>의 작자 엔리케 라레타(1875-1961) 등이 대표적 작가들이다.[10]
관광
아르헨티나를 찾는 관광객들은 자연스러운 경관과 지리적 특질, 문화적 특성에 대해 크게 매료된다. 더욱이 2001년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약세로 환율이 외국인 관광객들에 유리해지면서 남미 중에 아르헨티나를 여행지로 찾는 사람들도 많다. 자국의 통계국에 따르면 2005년도의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12% 성장하였으며 전체 서비스업 관련 총액의 8.1%, 국가 전체 생산 중 세 번째로 높은 산업을 관광이 차지하였다. 당시 방문객은 370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통계상 최초로 외국인들의 아르헨티나 방문객이 해외에 여행을 떠난 아르헨티나 사람보다 많아졌다. 2006년 1/4분기에는 전년 동일 분기에서 22%나 상승한 560,265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31%는 유럽, 19.2%가 미국과 캐나다, 14.2%는 브라질, 9.1%는 칠레, 14.1%가 이웃 국가 출신의 관광객이었다.
외교
참고
↑ 아르헨티나 헌법 제35조에서는 역사적 국명인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와 아르헨티나 연방이라는 국명에 '아르헨티나 공화국'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또한 아르헨티나 헌법은 법령에서 아르헨티나국(-國, 스페인어: Nación Argentina 나시온 아르헨티나[*])이라는 국명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헌법상 공식 명칭인 아르헨티나국보다 아르헨티나 공화국(-共和國, 스페인어: República Argentina 레푸블리카 아르헨티나)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 아르헨티나의 눈물 '반복되는 위기'《한국경제》2003년 8월 18일
↑ “보관 된 사본”. 2008년 4월 2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4월 29일에 확인함.
↑ “Sentencia dictada por el Juez Jorge Ballesteros en el juicio penal Olmos, Alejandro c/ Martinez de Hoz y otros s/ Defraudación, del 13 de junio de 2000 (Exte. 14467)”. 2013년 9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9월 27일에 확인함.
↑ IPI, 아르헨티나 미디어 개편법안 비난
↑ INDEC[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아르헨티나총선 `부동층 표심 野로'
↑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2013년 6월 20일).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한울 아카데미. 74쪽.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아르헨티나의 교통·도시〉
↑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외부 링크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 미디어 자료와 분류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분류) |
위키낱말사전에 관련된 항목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
위키인용집에 이 문서와 관련된 문서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
위키여행에 이 글과 관련된 기사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영어) |
(스페인어) 아르헨티나 정부 공식 홈페이지- 아르헨티나 정부포털
- 아르헨티나 한인회
- 주 아르헨티나 대한민국 대사관
- 주대한민국 아르헨티나 대사관
- 주아르헨티나 중남미한국문화원
분류:
- 아르헨티나
- 공화국
- 유엔 회원국
- 스페인어권
- 연방제 국가
- 미주 기구 회원국
- G20 회원국
(window.RLQ=window.RLQ||[]).push(function()mw.config.set("wgPageParseReport":"limitreport":"cputime":"1.552","walltime":"2.131","ppvisitednodes":"value":22683,"limit":1000000,"ppgeneratednodes":"value":0,"limit":1500000,"postexpandincludesize":"value":404576,"limit":2097152,"templateargumentsize":"value":63475,"limit":2097152,"expansiondepth":"value":19,"limit":40,"expensivefunctioncount":"value":4,"limit":500,"unstrip-depth":"value":0,"limit":20,"unstrip-size":"value":7312,"limit":5000000,"entityaccesscount":"value":1,"limit":400,"timingprofile":["100.00% 1324.387 1 -total"," 50.59% 669.953 12 틀:둘러보기_상자"," 17.92% 237.301 2 틀:둘러보기_상자_다단"," 17.42% 230.756 1 틀:아르헨티나_표"," 17.04% 225.659 1 틀:나라_정보"," 16.48% 218.263 1 틀:유엔_창립_회원국"," 16.17% 214.187 1 틀:정보상자"," 16.07% 212.874 127 틀:국기나라"," 15.63% 207.000 55 틀:국기"," 13.38% 177.139 1 틀:중남미·카리브_해_국가_공동체"],"scribunto":"limitreport-timeusage":"value":"0.292","limit":"10.000","limitreport-memusage":"value":6025119,"limit":52428800,"cachereport":"origin":"mw1303","timestamp":"20190327080352","ttl":2592000,"transientcontent":false);mw.config.set("wgBackendResponseTime":183,"wgHostname":"mw1243"););